inter - Media - te / 장한
inter : [라틴어] 사이에, 틈에, 가운데에
media : [영어] 미디어
te : [라틴어] 너, 당신
당신과 미디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 열광하고, 혐오하며, 존경하고, 무시하는 과정들. 어린 눈으로만 바라보던 세상을,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시기, 지금 우리는 초급자도, 상급자도 아닌, 중급자들이다. 초급자를 향한 배려도, 상급자가 가지는 능숙함도 없는 불친절 속에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미디어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져가고 싶은가. ‘나’라는 인격의 주체로서, 자신만의 눈과 귀를 가지는 수신자로서.
「미디어는 청소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벌써 세 번째 질문이다. 사골도 세 번째 우리는 게 제일 맛있다는데, 마침 세 번째인 이번 기사도 앞선 두 기사보다 더 읽을 맛이 있는 기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기사의 주제에 대해 비교적 최근에도 사회적으로 큰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폭력성, 뇌 기능 저하, 사회 부적응, 중독 등,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는 거의 전부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게임 미디어」이다. 실제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 대상 및 평가 대상에 따라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 항목이며, 이는 필자가 통계 분석에만 이틀 이상을 꼬박 쏟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이를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저번 기사들과 다르게 단순히 주이용자 평가에 관한 통계만 보고 얘기하기보다는, 조금 더 많은 통계들과 함께 미디어 기능과 이론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앞선 방송 미디어와 인터넷 미디어는 경계가 모호하여 정확한 재정의가 필요했지만, 게임 미디어는 이미 그 이름부터 가리키는 대상이 명확하여 별다른 정의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대상 지정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정의를 내리며 글을 열고자 한다. ‘게임 미디어’란,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사용자의 만족감을 충족하기 위해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의도에 맞는 심리적 또는 실질적 보상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미디어를 말한다. 또한 적용 범위는 핸드폰 게임, 콘솔 게임, 컴퓨터 게임 등 기기를 가리지 않고, 온라인 게임, 1인 오프라인 게임 등 온오프라인 및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 기사도 저번과 같이 주이용자 평가 비율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이제는 정이 들 것 같기도 한 그래프이다. 아무튼, 이우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게임 미디어는 방송 미디어와 인터넷 미디어보다 차별에 관한 경험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이용자의 68.4%가 게임 미디어 이용 중 차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전체 응답자의 55.3%가 차별과 관련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부정적 경험에 대한 코멘트도 게임 미디어에 관한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욕설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비하표현을 사용하며 협박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응답도 있었다. 그럼에도 주이용자의 97.1%가 지속적으로 게임 미디어를 이용하고 싶다고 응답한 것과, ‘스트레스가 풀린다.’,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다.’ 등의 긍정적 경험이 적지 않게 도출된 것으로 보아 게임 미디어가 청소년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음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게임 미디어에 대한 이우학교 학생들의 평가는 주이용자와 비이용자에 따라 갈렸다. 마치 작년 한 해 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록 논란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래는 (1)-‘게임 미디어가 청소년에게 해로운 미디어라고 생각하는가?’, (2)-‘게임 미디어를 계속 경험하고 싶은가?’ 그리고 (3)-‘게임 미디어를 계속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주이용자와 비이용자의 긍정 응답률을 기록한 그래프이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1)-‘게임 미디어가 청소년에게 해로운 미디어인가’하는 질문에는 주이용자와 비이용자의 응답 간의 간극이 크지 않지만, 앞으로의 경험 의지를 묻는 (2), (3)에서는 꽤나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더욱 재미있는 부분은, 게임 미디어 비이용자 중 ‘게임 미디어는 해롭다.’고 답했던 인원 중 1명을 제외한 모두가 ‘게임 미디어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것이다. 인터넷 미디어나 방송 미디어에 대해서는 ‘해롭다’고 답한 응답자들도 ‘경험하고 싶다.’와 ‘경험하고 싶지 않다.’에 거의 균등한 수준으로 응답한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또한 ‘게임 미디어는 해롭다’고 답한 응답자 중 2명을 제외하고는 게임 미디어의 종류(설문조사에는 온라인 게임, 오프라인 게임, 인디 게임으로 분류하였다.)와는 무관하게 모든 게임 미디어를 해롭다고 답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 미디어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 중, 전반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실존하며, 그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송 미디어나 인터넷 미디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 주제를 건드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앞에서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록 논란으로 확인했듯이, 게임 미디어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은 단순히 정신의학계와 게임업계간의 힘겨루기에서 벗어나, 그 대중 본인들 자체로도 상당히 양극화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며 비판하고, 때로는 비난하는 모습이 마냥 먼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게임 미디어와 관련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가치관, 삶의 방식을 비난하게 되고, 그들의 삶의 결정에 침범하여 실례를 범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결론부터 얘기하며 미디어 기능과 이론을 논하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 개개인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의 사회적 기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오락 기능’이다. 미디어의 4대 기능 중에서는 가장 늦게 인정받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름부터가 이전에 보았던 사회유산 전수 기능, 상관조정 기능보다 훨씬 직관적이다. 오락 기능은 개개인에게 휴식을 제공함으로 생활에 활기를 띄게 하고 기분전환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를 제작하고 확산함으로 사회적 정서를 형성하기도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20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표본(만 10세~만 65세의 일반인 3,084명)의 70.5%가 게임을 이용하고 있다고 하니, 게임 미디어 또한 거대한 사회적 정서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기능이나 그랬듯, 오락 기능 또한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오락 기능은 개인이나 집단이 지나친 쾌락을 좇거나 쾌락에 빠져 자신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게 할 수 있고, 3S 정책으로 대표되듯이, 대중들로 하여금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누군가는 역기능을 더 우려하여 게임 미디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순기능을 더욱 살리기 위해 게임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게임이 폭력성을 가지고 있건 말건, 게임이 중독 증세를 불러일으키건 말건, 이미 우리는 수많은 게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만큼 어떤 기능 중 하나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지금 게임 미디어가 자신의 삶에 미치는 순기능은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게임 미디어가 자신의 삶에 미치는 역기능은 무엇인가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WHO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록 논란이 한창 뜨거울 때는, 서로가 이러한 순기능과 역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물론 게임업계 관계자나 정신과 의사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일부러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이와는 관계가 없는 일반 대중들 사이에도 소통을 거부하는 사회적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러한 모습을 잘 설명하는 미디어의 효과 이론이 바로 ‘적대적 매체 지각’이론이다.
적대적 매체 지각이란, 매체가 중립적인 시각에서 보도하더라도, 사용자는 매체가 자신과는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말한다. 혹시 이미 이 글에서도 이러한 효과를 겪은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최대한 게임 미디어 본질에 대해서는 찬성이나 반대를 밝히지 않고 중립적으로 작성하고 있는데, 혹시 필자가 게임에 대해 친화적인 글을 쓴다, 혹은 게임에 대해 반대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한 독자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그렇게 느꼈다면 자신의 게임에 대한 성향은 어떤지 점검해보자. 이 글이 게임 친화적이라고 느낀 독자일수록 게임에 반대하는 성향이, 이 글을 게임 비친화적으로 느낀 독자일수록 게임에 찬성하는 성향이 강할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필자가 글을 상당히 못썼다고 생각해주시기를 바란)다. 어쨌든 이처럼, 특정한 이슈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일수록, 매체의 중립적인 보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사회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이 이론이다.
게임과 관련된 예시로는 MBC의 게임 중독 관련 100분 토론이 있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적대적 매체 지각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례이긴 하지만, 적대적 매체 지각의 뉘앙스를 이해하기에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하여 가져왔다. 비록 노이즈 마케팅에 불과한, 토론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방송이었지만 파급력은 엄청났다. 방송 직후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록 논란에 대한 반대파는, 이미 이 토론은 사회자부터 편향된, 그저 게임 죽이기에 지나지 않는 방송이었으며, 찬성 측의 비정상적인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격한 반응을 보였고, 찬성파 중 일부도 이 100분 토론은 찬성 측의 의견을 그저 비전문가의, 비상식적인 우기기로 몰아세웠다며 반대파에게 이성적인 분별력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처럼 대중들(그리고 우리들)은 줄곧 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 ‘이미 사회적 분위기는 상대편으로 넘어간 것 아닌가?’하는 위기의식을 맞닥트리고는, 자신의 의견을 위해 더욱 단단히 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통을 위한 연대가 아닌, 그저 싸움을 위한, 굴복시키기 위한, 저지를 위한 연대가 더 많이 만들어지는 실정이라 그저 아쉽기만 하다. 게임에 관련한 사회적 논란도 항상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서로 대화는 거부한 채,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기만 하는 그런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임 미디어에 대한 공적 공간에서의 논의에서, 서로의 의견에 대해 소통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우학교에도 게임에 대한 일반적 반발심이 있는 집단과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양극의 집단이 실존한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지루했을 수도 있는 인식과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지나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해왔던 이 게임 미디어는 이제 하나의 예술장르로도 취급받기 시작했다. 2D, 혹은 3D의 그림, 모델과 음악과 효과음, 스토리와 대사까지 우리가 지금까지 예술이라고 불러온 것들의 집합체의 형상을 띄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예술 작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하는 고민도 해야 한다. 필자의 이전 프로젝트인 「재해석된 예술」은 비록 결론이었던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지만, 필자 나름대로 내렸던 답변과 섞어보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첫째, 게임이 예술이라면,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거대한 역사적 흐름 안에서, 게임은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둘째, 게임이 예술이라면, 「조커」에서처럼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셋째, 게임이 예술이라면, 힙합처럼 거대한 전성기를 누리는 지금, 어떻게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어떻게 예술사에 기록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게임을 받아들이게 되는 우리는, 앞서 말했던 결론처럼, 우리 개개인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는 인식과 소통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방송, 인터넷, 게임 총 3부작으로 이어진 inter-Media-te의 정규 기사들이 모두 끝났다. 매번 서두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이 기사들을 우리 청소년, 중급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하고, 설문지를 뿌리고, 또 가끔은 애절하게 부탁하기도 하며 자료를 모으고, 적어서 올렸다. 개인이 진행한 프로젝트다보니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분명이 많았지만, 이렇게 마지막 멘트를 적는 것의 짜릿함을 깨닫게 되어 역시 그만두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언제나 그랬듯, 조금은 오글거릴지도 모르는 마지막 인사로 모든 기사를 끝마치려고 한다. 초급자를 향한 배려도, 상급자가 가지는 능숙함도 없는 불친절 속에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하는 우리, 중급자들에게, 언젠가 건강하게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우리, 중급자들에게, 언제나처럼 계속, 작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 본편에서 못 다한 이야기로 부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