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과거에 열광하는가. / 장소명
이른바 '군통령'이라 불리며 현재 유례없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과 '운전만해(We Ride)', 20~40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다시금 명곡의 위력을 입증하고 있는 3인조 보컬그룹 SG워너비의 'Timeless'와 '라라라', '내사람'. 그리고 국내 대표 싱어송라이터 아이유의 최초 자작곡이자 2011년 5월 25일 발매된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OST인 '내 손을 잡아'까지. 이들은 모두 음원 발매 후 일정 시간이 흘렀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재조명되어 음원 시장의 변혁을 불러오며 역주행의 수혜를 얻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역주행 현상의 배경과 영향을 SNS와 대중성에 근거해 설명하고자 한다.
SNS가 빠르게 발전하며, 이제 대중들은 다양한 예술과 문화를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필두로 한 소셜미디어는 글, 그림, 사진, 영상 등 복합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넓고 다양한 정보를 대중에게 간단하고 쉽게 전달함과 동시에 여타 매체들을 능가하는 막대한 영향력과 화제성을 지닌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SNS의 이점이, 역주행의 매서운 돌풍을 일으키는 배경이 된다. 앞서 언급한 브레이브걸스와 아이유 역시 SNS가 그 시초였다.
먼저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의 경우, 지난 2017년 초 발매되었지만 당시 그룹의 인지도와 더불어 노래 역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며 몇 번의 음악방송을 끝으로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잊혀져 가는 듯했으나, 유튜브에 게시된 한 영상으로 상황은 반전된다. 현재 조회수 2000여 만회를 기록하고 있는, 2021년 2월 24일 유튜브 채널 '비디터(VIDITOR)가 게시한 위문 부대 공연 댓글 모음 영상이 인터넷 상에 삽시간에 퍼져나가며 브레이브걸스는 화제의 중심에 섰고, 이에 더불어 곳곳에서 브레이브걸스의 위문 부대 공연 영상이 떠오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에는 유튜브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인 '알고리즘(Algorithm)'이 큰 역할을 했는데, 실시간 급상승 영상과 이용자의 성향에 맞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해주는 특징을 기반으로 조회수가 단기간에 폭등한 것이다.
아이유의 '내 손을 잡아' 역시 유튜브의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 2011년 발매된 이 노래는 당시에도 멜론 주간차트 1위 및 연간차트 Top 100에 드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들의 귀에서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한 이용자에 의해 공개된 콘서트 직캠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었고, 그 여파로 음원 차트에 재진입까지 하며 한동안 이 노래를 듣지 않았던 대중들과 처음 접하는 대중들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SNS를 통한 역주행 사례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역주행 신화'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크레용팝의 '빠빠빠'와 EXID의 '위아래'를 비롯해, 개인방송을 통해 알려진 신현희와 김루트의 '오빠야', 방송 출연으로 화제가 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등, 이제 역주행은 SNS를 통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대중의 관심과 열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가사가 재밌어서'
'멜로디가 좋아서'
'뮤직비디오가 예뻐서'
물론 이러한 이유로도 역주행이 일어날 수 있지만, 단순히 노래에 대한 평가만을 두고 급작스럽게 화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SNS에 이 단어 하나가 붙어야, 역주행은 비로소 완성된다.
노래는 '추억'을 담는다. 그것이 바로 노래가 가진 힘이다. 노래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연들은 우리를 추억 속으로 데려간다. 일상을 초월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따뜻한 봄, 벚꽃이 만개한 거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들었던 버스킹 노래. 무더운 여름, 해변 앞바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돌림노래. 선선한 가을, 잔디밭에 누워 혼자 흥얼거렸던 연가. 추운 겨울, 사랑하는 연인과 두 손 꼭 붙잡고 길을 걸으면 흘러나오던 캐럴. 이처럼 노래에는 그리운 풍경이 있고, 그리운 계절이 있고, 그리운 사람들과 추억이 있다.
복고를 콘셉트로 한 노래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예전 노래의 음악적인 부분을 모방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노래를 통해 대중들의 기억과 추억을 되살려 관심과 호응을 얻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지난여름, 전국을 강타한 3인조 그룹 싹쓰리의 경우도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복고 컨셉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발매하여, 코로나 19로 점점 지쳐가는 대중들에게 그들이 잊고 있던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순간과 뜨거웠던 여름의 추억을 선물해주었다.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는 SG워너비의 노래들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SG워너비는 2000년대 중후반을 싹쓸이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그룹이다. 당시 어딜 가나 SG워너비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대중적인 멜로디와 노래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그렇기에, 대중들의 마음속에는 이들의 노래와 함께한 무수히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추억을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와 SNS가 다시 꺼내 준 것이다.
작년에는 여성 3인조 보컬 그룹 씨야가 JTBC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에 출연한 직후, 각종 매체와 SNS에서 화제가 되며 십여 년 전 발매했던 노래들이 차트로 재진입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역시 각자가 가진 추억들을 나열하고, 함께 공감하는 대중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래를 처음 접하는 젊은 층에게도, 역주행은 세대 간의 공감을 이끌어주는 장치가 되곤 한다. 우리 부모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지, 어떤 노래를 듣고 어떤 추억들을 쌓으며 청춘을 보냈을지에 대한 막연한 궁금함은 그들로 하여금 직접 노래를 찾아보게 만들고, 그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며 역주행의 흐름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젊은 층의 합류를 통해 SNS는 더욱 활발해지고, 국지적인 현상을 넘어 전 연령을 아우르는 역주행이 탄생하게 된다.
최근 음원 조작과 사재기 논란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국내 대중가요계에게, 대중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참여가 만들어낸 역주행은 그 자체로 커다란 성과이자 축복이다. 그리고, 이는 코로나 19의 지속으로 소비자들의 실질적인 음원 이용 시간이 감소하며 전체적인 침체가 이어지던 각종 음원 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이제 역주행은, 단순한 신드롬을 넘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는 중이다. 앞으로도 대중들의 추억을 상기하고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노래들이 지속적으로 역주행하게 된다면,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 우리 대중가요는 더욱 풍성해지고, 음악적으로도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SNS와 추억이 담긴 노래가 만날 때, 우리는 대중과 시대의 조화를 목격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중가요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전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