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작가
산책하다 제비 한 마리를 만났다. 흑백의 조화가 턱시도를 차려입은 듯하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아들 생각이 났다.
회사에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의논할 게 있어요.”
아들의 이야기는 편의점에 가다 우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는데 하필이면 찻길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위험한 것 같아 편의점 옆으로 옮겼는데 걷지를 못하고 울기만 했다. 너무 애처롭게 울어 외면할 수가 없어 집에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먹을 것을 주면서 살펴보니 다리를 다친 것 같아 동네병원에 갔다. 의사한테서 들은 말은 하루빨리 다리 수술해야 한다는 것과 자기 병원에서는 할 수 없고 큰 병원에 가보라는 거였다. 내일 큰 병원에 가려고 한다면서 수술비가 대략 오백만 원 정도 한다는 내용을 차분하게 마치 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백만 원’이라는 액수에 놀란 나는 순간 멍해졌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갓 취업한 아들은 우리 부부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중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내 손에 있던 전화기를 가져갔다. 아들 형편으론 어려우니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그 말에 아들은 아빠도 길냥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으면서 자기는 왜 안 되느냐고 서운한 티를 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기를 다시 내게 건네주었다.
남편 말에 마음이 다급해진 아들은 엄마가 도와주면 매달 월급 받아서 갚겠다고 한다. 망설이는 내게 마지막으로 아들은 “엄마, 돈 때문에 어린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한다. 맞는 말이다. 평소에 돈보다 생명이 더 귀하다고 말하면서 자식을 키운 건 우리 부부이다. 우리가 말한 대로 아들은 살고 있다. 일단 내일 큰 병원 가서 상담받고 다시 전화하라고 했다.
남편은 길냥이들 밥과 물을 챙기면서 집에 있는 사료 다 주고 나면 밥 주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현관문을 닫았다. 내가 시작한 밥 주는 일을 요즘은 날이 추워지면서 남편 혼자 하고 있다. 아들의 마음도 남편의 마음도 다 이해되었다. 다만 오백만 원이라는 병원비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괜히 착한 아들 마음 몰라주는 의료시스템이 미워지고 오백만 원을 오십만 원 정도로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 형편이 싫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남편 눈치부터 살핀다. 들어오자마자 남편은 한숨을 쉬면서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가보니 처음 보는 어미와 새끼 고양이가 와서 밥 주길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간식을 주니 어미는 안 먹고 새끼 먹는 모습 지켜보더라며 그 어미와 새끼를 보고 나니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단다. 우리 부부에게 이 일은 시작하는 것보다 멈추는 게 더 어렵다. 생명 돌보는 게 쉬운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여러 곳을 가봤는데 그중 한 곳이 실력도 좋으면서 수술비가 사백만 원이라고 해서 그곳에 고양이를 입원시켰다고 한다. 입원시켰다는 말에 한마디 하려다 사백만 원이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백만 원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아들도 그랬을 것 같다. 하루가 급한 수술이라서 입원을 빨리 시킬 수밖에 없었단다. 이미 수술하기로 한 것을, 뭐라 할 수도 없다. 나는 잘했다고 하면서 한마디는 해줘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명품 살 생각 하지 말라. 너는 명품 살 돈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했으니, 큰 자부심과 책임감 가지고 살아라.” 칭찬을 빙자한 잔소리에도 아들은 밝은 목소리고 “네.” 대답한다.
그러곤 푸바오라는 이름과 사진을 보내준다. 푸바오의 모습이 꼭 제비처럼 턱시도 냥이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제비처럼 생겨서 나중에 박씨 물고 오겠지, 한다. “지 다리 고쳐줬는데.” 그 말에 헉, 할 말이 없다. 제비, 박씨? 나, 박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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