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서 보내는 여행 편지 #1

To. 엄마에게

by 방자

엄마 잘 지내지? 나는 지금 조지아, 시그나기라는 작고 예쁜 마을에 있어. 인구 3천 명 정도의 언덕 위의 도시야. 어제 왔는데, 어제 한 바퀴 휙 둘러봤더니 마을이 작아서 오늘은 할 일이 없네. 내일은 떠나야겠다고 방금 마음을 정했지. 괜찮으면 며칠 있을까 하고 다음 예약이 없는 상태에서 왔는데, 아침에 숙소 나와서 1시간 정도 문 연 카페를 찾아다녔는데 못 찾았어. 그리곤 하루 더 있는 건 무리라는 결정을 내렸어. 심심함에 지칠 것 같아. 아무래도 요즘 비수기인가 봐. 결국 마을 중앙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와 차 한잔을 시키고 앉았는데, 여기도 손님이 나 밖에 없네. 그래도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더 친절하고 관심을 보이는 게 느껴져.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는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그리고 세 손녀들이 사는 민박집인데 다들 친절히 잘해주셔. 다만 말이 안 통해. 그들은 조지아어와 러시아어만 할 줄 알고, 나는 둘 다 아예 못하니까 ㅋ 아침 먹는 내내 할머니랑 아주 단편적 바디 랭귀지만 주고받았어. 근데, 내가 할머니라 부르는 푸근한 할머니 느낌 나는 분이 엄마랑 동갑이시더라. 내가 그랜마, 그랜마(grand mother) 하고 부르다 그 소리 듣고 움찔했어. 젊어 보이신다는 맘에도 없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지. 아침엔 조지아식 만두와 튀김, 야채, 과일, 빵 그리고 와인까지 푸짐하게 먹었어. 아침부터 하우스 와인을 한 잔 따라 주시더라고. 여기 와인 천국이야. 특히 이 동네는 집집이 다들 와인을 담그는 거 같아. 오는 길에 포도밭이 많았고, 동네에도 와이너리가 많아.


오늘부터 하루에 하나씩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어. 심심해서 하는 여행 프로젝트인데 엄마가 첫 번째야. 좋지? 이 마을에선 저 멀리 평지에 있는 마을과 설산이 보여. 사진 첨부할 테니 봐봐. 정말 풍경이 이뻐! 이 아름다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심심하고 여유로운 듯 해. 어제는 길가다가 누군가의 초대도 받았고 (하우스 와인을 주겠다고 했는데 상황상 이런저런 이야기만 한참 하다 떠나 왔어), 저녁을 먹은 음식점 집 아들은 내게 인스타그램 친구를 하자고 했어. 사람은 더 적은데 도시(트빌리시)에 있을 때 보다 덜 외로운 느낌이야. 그래도 난 내일 어딘가로 떠날 예정이야. 북쪽은 벌써 눈이 많이 와서 춥고 교통이 좋지 않다고 하니 나의 여행은 트빌리시를 중앙에 두고 동/서쪽 중심이 될 거 같아. 여긴 가족 여행을 하기도 그리고 여자 혼자 여행을 하기도 좋은 나라야. 물가도 저렴하고, 안전하고 사람들도 친절해.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말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이 변화가 세계화 속에서 막을 수 없는 거라면 더 늦기 전에 경험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 같은 여행자들이 많아지는 게 변화를 촉진시키니 지양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엄마는 어떻게 지내? 일상의 많은 문젯거리들이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을 것 같지만, 하루쯤은 탈탈 털어버리고 신선한 기분으로 보내는 날이 만들길 바라. 나는 이 먼 곳까지 와서도 지난 일 년 동안의 노동자 때가 빠지는데 꽤 시간이 걸리고 있음을 느껴.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 더 Turn on/off가 잘 되는 사람이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혹은 내년엔 그런 기회를 함께 만들어 봐도 좋을 거 같아!

사랑해. 늘 더 행복하길 바랄게!!


2018.11.28.

시그나기에서


Georgia, Sighna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