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음표에게
안녕, 음표야! 잘 지내고 있는 거 알고 있으니 안부는 생략할게. 원래 너에 앞서 선에게 편지를 보낼 생각이었으나 오늘 아사모사 <필로소피 편> 방송을 듣고, 오늘 네게 편지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손편지는 아니지만 편지의 시대를 그리워하던 네게 작으나마 기쁨이 될 수 있길 바래! 나 역시 썩 잘 지내고 있다는 거 알듯 하니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보낸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할게!
조지아는 네가 사진 보고 감탄한 그만큼의 자연적 아름다움과 이국적 문화 정취가 곳곳에 묻어 있어. 근데, 주로 걸어 다니는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공기는 별로 좋지 않아. 오래된 차들이 많아 매연이 심하거든. 집 떠나온 지 딱 2주가 되었는데, 와인으로 유명한 카헤티(Kakheti)지역에 며칠 다녀오고, 어제 므츠헤타(Mtskheta)라는 트빌리시 근교의 작은 마을에 다녀온 걸 빼고는 거의 트빌리시에서 머물렀어. 그래서 이제 지하철은 물론이고, 버스, 택시도 고민과 부담 없이 타는 경지에 이르렀지! 그게 뭐 별일일까 싶을 수도 있지만, 여기 영어 표기가 많지 않고 영어가 잘 안 통해서 쉬운 일은 아닌데 여러 가지 보조 아이템(바디 랭귀지, 번역 앱, 택시 앱 등)을 사용하게 되었고 동네가 작고 안전에서 그냥 그냥 아무거나 타도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적음을 인지하게 되었지. 그래서 난 내일을 준비하지 않고 사는 사림 되었어. 나 내일 아침에 체크아웃하고 다른 지방에 갈 건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직 몰라~
오늘은 오전에는 트빌리시에 와서 가장 좋아하게 된 카페 degusto에서 공부를 좀 하며 여유롭게 보냈고, 오후에는 Yoga cave에서 2시간 동안 요가 수업을 들었고, 그 후론 3시간 정도 정처 없이 도시의 안 가본 곳을 걸어서 헤매다 저녁이 되어 파란 대문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오늘 밤기차로 아제르바이잔으로 떠나는 룸메이트와 한참 수다를 떨다 막 네게 편지를 쓰고자 앉았어. 네게는 특별히 숙소, 요가원, 카페의 링크를 찾아 달았어! 왠지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 것만 같아서~ ㅋ 내 마음에 든 트빌리시 핫 플레이스들이거든.
오늘이 네 번째 요가 수업이었는데 원래 수업하시던 분이 아프셔서 다른 분이 하셨거든, 근데 그분이 영어를 못하셔서 조지아어로만 수업을 진행하시더라고. 다른 분은 조지아어와 영어 2개 국어로 수업을 하셨거든.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을 눈치로 2시간 동안 참여하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수다스러운 요가 수업이었는데 오늘은 외국인이 나뿐이라 혼자만 못 알아듣는 거 같더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알아듣지 못하니 그저 알아들으려 노력만 했는데 그렇게 평소에 늘 하던 이해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싹 내려놓고 그저 타인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튀는 이방인이 되질 않길 바라는 작은 소망만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내가 차라리 평소의 나보다 나은 나인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이런 맘 이해가? 말을 줄여야겠어. 특히 방송에서... ㅋ 그게 오늘 하루의 가장 큰 깨우침이야.
지금 있는 뉴 트빌리시에서 걸어서 쿠라 강을 건너 플리마켓이랑 퍼블릭 서비스 홀, 그리고 러스타벨리 애비뉴를 걸었는데(대체 어딜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 괜찮아. 나도 방금 알았어. 글로 쓰려니 필요해서 찾아보게 되고 좋네), 나 오늘 트빌리시 퍼블릭 서비스 홀에서 어떤 감동 혹은 부러움 같은 걸 느꼈어. 엄청 크고 세련된 건물이 있어 뭔지 궁금해서 가본 거였는데, 공공서비스 기관, 즉 민원센터 같은 거더라고. 건물의 멋짐과 400여 종의 온갖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 내부의 리버럴 한 인테리어 등에 감격했다. 진짜, 언어 문제만 해결된다면 장기 체류하고 싶은 나라야. 네게 조지아의 매력이 자연적 아름다움만이 아니란 걸 알리고 싶었어 ㅋ
음표야, 내가 네게 오늘 당장 편지를 쓴 건 아무래도 네가 편지를 쓸 기회를 그리워하는 듯해서였어. 네게 기회가 주어졌어. 우표 붙여 보내는 편지만큼 천천이 와도 괜찮아. 답장 기다릴게. 좋은 하루 보내!
2018.12.03.
트빌리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