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선에게
썬!! 잘 지내? 요즘 바빠? 매우 오랜만인 느낌이 들어. 그래서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내년엔 뭔가 같이 하는 게 좋겠어. 내 성격이나 네 성격에 종종 연락하고 안부라도 알고 살려면 우리 사이에 뭔가가 혹은 누군가가 필요한 느낌이야. 돌아가기 전에 고민해보고 연락할게~ 너도 생각해봐!
나 지금 조지아에 있어. 정확하게는 수도 트빌리시에서 2~3시간 정도 떨어진 보르조미라는 작은 마을이야. 오늘 왔고 아마 2~3일 정도 있을 듯해. 북쪽은 날이 많이 춥다고 해서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이곳으로 왔는데, 여기도 춥다. 트빌리시에 짐 일부를 두고 2~3일 용으로 짐을 쌌지만 그래도 컴퓨터가 있어서 족히 7~8kg는 나가지 않을까 싶은 배낭을 메고, 오늘 참 많이도 헤맸어. 가방의 무게가 마음에 걸려 방황하는 시간을 줄여보고자 이동하는 버스에서 대충 검색해 숙소를 예약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사방에 널린 건 게스트 하우스인데 내가 찾는 그 주소는 동네 몇 바퀴를 돌아도 못 찾겠더라고. 길에 있는 사람들은 영어 한마디 못하고, 사람도 거의 없고.. 처음엔 날보고 엄청 짖어대던 개를 왔다 갔다 하며 한 4번 보니까 나중엔 내게 꼬리를 흔들더라. 그렇게 40분~50분을 길에서 헤매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숙소에 전화를 걸어 한 할머니가 날 데리러 왔는데 그 할머니 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이런저런 해프닝이 있었어.
결국, 적어도 한 달 이상은 비어져 있던 게 아닌가 싶은 숙소에 들어왔지. 나 지금 많이 춥다 ㅋ 화장실 가고 싶은데 밖으로 나가야 해서 그도 망설이고 있는 판이야. 그래도 한참만에 도착한 집주인은 나름 무료로 방도 업그레이드해주고, 말도 안 통하는데 정말이지 최선의 친절을 보여줬어. 추측 건데 주인은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사는 거 같아. 집은 성수기가 끝나고 한동안 비워져 있어 별 신경을 안 썼지만, 왜 평점이 높았는지는 알 거 같아. 위치가 좋더라고. 다만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샛길로 왔어야 했던 거지. Booking.com에 사진으로 설명을 해뒀는데 내가 핸드폰 배터리가 없고 사전에 예약한 게 아니라 치밀하게 챙기지 못한 거였어. 너무 갑작스레 예약하고 와서 그쪽도 준비를 못한 거 같고. 암튼 오늘은 내내 인내와 기다림의 오후를 보냈어.
보르조미는 물이 유명하대. 마트에서도 보르조미 물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데, 먹어보니 짭짤한 탄산수더라고. 근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 이래. 에비앙보다 비싼? 이 동네에서 천연 광천수가 나는 거지. 주인 말을 대충 알아듣고 센트럴파크에 가봤는데 온천도 있고 (온천이 입구에서 너무 멀리 있어 차마 거기까지 가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물 뜨러 많이 오는지 입구에 물통을 잔뜩 팔더라. 하지만 겨울의 늦은 오후라 사람이 거의 없었어. 을씨년스러운 공원을 2시간이나 헤매다 돌아왔어. 왜 그랬냐고? 나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ㅋ 내일은 기차 타고 옆 마을에 다녀올 생각인데, 그 후에라도 다시 그 공원에 가서 트레킹 코스를 따라 온천까지 볼까 싶기도 해. 아무튼 추운 지역으로의 겨울여행은 앞으로 삼가야겠다는 게 요즘 생각이야. 우리가 늘 말만 하고 함께 여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꾸 내가 이런 고생한 여행 에피소드를 네게 이야기해서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년엔 꼭 같이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 남들하고 여행할 땐 나름 가이드의 마인드로 치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니 괜찮을 거야. 오늘은 예쁜 사진을 찍은 게 없어 아쉽네. 오늘의 핫 포토는 공원에서 줄 서서 물 마시던 강아지 사진이야. 쟤 전에 어떤 꼬마가 마셨고, 담에 내가 마셨지. (음표와 달리) 네게 답장은 요구하지 않을게. 우린 나 돌아가기 전에 영통 함 하자! 좋은 뷰가 나타나면 연락할게~ ;)
잘 지내고, 한 해 마무리 잘하길 바래!
2018.12.04.
보르조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