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집 S2 - 인도의 향기
인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고 인연을 만들었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갓 인도 청년과 결혼하고 인도 라이프를 시작한 한국댁, A와 20년 결혼생활의 벼랑에 서있는 40대 초반의 스웨덴 신사, B 두 명인 것 같다. 그들은 낯선 나를 자신들의 상황과 삶의 이야기로 초대해 주었고 그리하여 나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A는 인도 여행 중 만난 남편과 결혼해 인도에서 산지 갓 반년이 지난 신혼 댁이었다. 나는 아침이 오지 않는 깜깜한 새벽에 도착한 맥그로드 간지 버스정류장에서 숙박업을 운영하는 그녀의 남편을 만났다. 그녀의 남편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틀 뒤 그녀를 찾아갔다. 맥그로드 간지에 머무는 2주 동안 거의 매일, 하루 30분 정도씩은 그녀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고 하루는 둘이서 왕복 10시간 동안 함께 산행을 하였다. 우리 이야기의 주된 주제는 나의 여행과 그녀의 결혼생활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근처의 요가를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곳이라던가 언어교류를 할 수 있는 NGO단체, 티베트 전통의학을 접할 수 있는 병원 등 그날 새로 알게 된 것들을 알려주었고 그녀는 인도에서 6개월 동안 인도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며 배운 인도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통찰을 공유해주었다. 그녀는 혼자 여행하는 내게 용감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남편만 믿고 타향살이를 시작한 그녀야말로 내게 없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어쩌면 사랑이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내가 혼자 여행하는 데에도 사랑이 있으니 우리는 다른 방법일 뿐 같은 목적하에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남편은 나이는 어렸지만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본 그녀는 솔직하고 겁이 많지만 필요할 때 용기를 낼 줄 알고 누구에게나 배움을 얻는 그런 사람이다. 두 명의 다른 문화에서 자란 남녀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수많은 오해를 만들지만 그래도 이해와 배려를 키워나간 지난 반년 간의 신혼 생활기는 흥미로웠다. 그녀는 스스로 하소연은 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그녀가 드라마에나 나오는 누구인지 무엇을 가진 사람인지가 중요치 않은 기름을 부은듯한 불같은 사랑을 지나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아름다운 불꽃을 만드는 장작더미 속의 춤추는 새로운 사랑이야기의 시작점에 있는 여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서로를 꺼내 주물럭주물럭 섞어준 뒤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 가는... 그런 사랑. 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가치에 응원을 보낸다.
B를 만난 곳은 리시케시에 있는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는 어느 인도인의 가정집이었다. 화장실이 없던 그 집에는 3살짜리 인도 아이와 우리에게 카레 만드는 법을 알려 준 이십 대 중반의 아이 엄마, 삼십 대의 미혼여성인 나, 사십 대의 이혼을 꿈꾸는 스웨덴 아저씨 B가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나눈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에 대한 흥미를 자극했지만 보채는 아이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아이 엄마와 헤어질 수밖에 없던 나와 그는 카페에 자리 잡고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는 헤어짐과 모든 것의 끝까지 생각해 본 사람이었고 친구의 권유로 이곳에 와 오쇼의 명상센터를 다니며 명상수행을 하고 있었다. 여행의 막바지, 수많은 흥밋거리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었지만 그와의 대화는 가벼운 볼거리 이상의 재미와 가치를 지녔음을 직감했다. 그 후 나는 한국에 돌아오기 전날까지 나흘 동안 하루에 한 두 끼씩은 그와 밥을 같이 먹고, 하루 서너 시간씩은 그와 대화를 했다.
스무 살에 와이프를 만나 결혼을 한 그는 사십 대 초반의 나이에 대학생 딸을 비롯한 세 아이가 있었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산 사람이었고, 와이프를 사랑했지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는 무언가에 시달리고 있었다. 관계를 끊어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잃게 될 수많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렇게 유쾌하고 젠틀하면서 많은 지식을 가진 매력적인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끝나버린 사랑이라고 하면서도 그 추억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그 모습이.. 그가 ‘어른들’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과도기의 그는 나를 만나 많은 것을 토해 놓았고, 나와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듯했다. 나는 그를 통해 ‘결혼 후'에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가 청춘의 사랑을 되찾거나 성숙된 사랑의 참맛을 보길 바란다. 그의 새로운 마음과 시선으로 시작될 사랑을 응원해 본다.
#인도 여행 #맥그로드 간지 #신혼 #리시케시 #중년의 사랑 #201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