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뒤돌아 봤을 때 후회 없는 삶을 꿈꾸며... Li.ED
어제 워크샵에서는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한 사람과 1:1 피어코칭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배우라는 직업이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감독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일을 자신의 뜻과 다르게 수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종종 자신이 쓴 작품에 출현하기도 한다고 한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이유가 배우로서 스스로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지기 위함이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종종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 뮤지컬 같은 분야에서 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현장을 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협업하여 만들어 내는 하나의 완성도 있는 결과물, 그리고 그것을 위한 노력, 열정, 열기, 치열함 등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그들에게 부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커다란 프로젝트에 감독, 배우, 작가, 스태프 등의 일원이 된다면 나는 과연 만족스럽게 잘 해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큰 규모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비효율을 불편해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효율/효과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권위적이거나 계층적인 의사결정도 좀 찜찜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기의 부러움은 그저 가져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지, 실제 가지고 싶다는 마음은 아닌 듯하다. 막상 가져도 그것을 즐길 자신이 없으니 말이다. 어렸을 적,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는 시간이 곤역이었던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이러한 가짜 욕구를 잘 걸러내는 것이, 어쩌면 더 잘 사는 삶의 키(key)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일하고 싶은 방법, 살고 싶은 삶은 무엇일까? 혼자 하는 글쓰기, 수영, 요가나, 내가 의사결정권을 가진 소규모 교육/학습 환경/여행 기획, 운영 등이 사실 내가 가진 역량이나 성향이 잘 쓰이기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해 주로 그런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하는 편이고, 더 잘 살길 원하지만 그것이 소유나 지식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음가짐과 경험 정도의 문제일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혹여라도 내가 놓친, 물을 주면 아주 매력적인 꽃으로 피어날 작은 잠재력 씨앗이 어딘가에서 나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경험과 삶을 열어 줄 기회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금 봄날의 꽃처럼 피고, 웃고, 따뜻한 그런 삶의 순간을 맞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헛된 희망일지 모르는 이 상상이, 나를, 그리고 많은 이들을 권태에서 구원하진 못할지라도 하루를 더 잘 살아보자는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창의성 탐구를 하면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새로운 잠재력을 찾을 수, 혹은 그것에 닿을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말과 글, 컴퓨터의 몇몇 도구를 활용해 시각화하는 것 외의 도구를 사용해 나를 표현하는 것에 아직도 서툴다. 뭐, 그렇다고 말과 글이 출중한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도구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다른 말로는 시작하고 싶은 마땅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악기를 배워봐? 몸 쓰는 것을 새롭게 할까? 그래 손그림에 한번 도전해 보자. 이런 생각들이 찾아왔다가 잡아 볼까 마음이 들기도 전에 떠나 버린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호기심일까? 모험심일까? 삼십 대의 막바지에 들어서니 뒤를 돌아보니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10대, 20대, 30대는 참으로 달랐구나.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섬 소녀에서 방황하는 촌년으로, 여행자로, 교육 디자이너로 조금씩 바뀌어 온 내 삶의 궤적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이어져 가겠지만 내가 의도를 가지고 길을 만들어 간다면 나는 어디로 이 선을 이어가면 좋을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욕구, 비전, 목표, 실행 계획. 나는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 말이 나에게 한 말 이었구나 싶다. 근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면, 사실 별거 없다. 딱히 성공이나 명성을 바라지도 않는 나는, 그저 삶이 더 재미있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이렇게 성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