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days in America #1
나는 Cuba의 Casilda라는 작은 마을, 빛이 잘 들지 않는 방 침대에서 곰팡내 나는 에어컨을 틀어 온몸에 오른 알레르기 반점의 가려움을 가라앉히며 누워 있었다. 그래도 주간 글쓰기 프로젝트 글림의 마감 전 뭐라도 써야지 하는 생각에 내가 한 특단의 조치는 다운로드하여 둔 알릴레오 북스를 튼 것이다. 사람들의 깊은 대화는 종종 영감을 주는 법이고 그러면 뭔가 쓸거리가 생각나기도 하니까. 잠깐 졸다가 시폰 커튼 밖 나무 창으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눈을 떴더니 거기엔 방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도마뱀의 머리가 보였다. 어제도 낮잠을 잘 때도, 아침에도 그 창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여 신경 쓰였던 그 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도마뱀과 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꼼짝도 하지 않다가 살짝 눈을 감고 있다 뜨면 살짝 자세를 바꾼다고 느껴져 나는 혼자서 기를 쓰고 눈을 뜨고 있다 길게 눈을 감았다 하는 놀이? 신경전을 벌였고 하필 팟케스트에서는 조지 오웰이 쓴 두꺼비에 대한 관찰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피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나는 왜 쿠바에 오고 싶었나. 아니 나는 지금 대체 쿠바에서 뭘 하고 있나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싶어 폰을 멈추고, 시폰 커튼을 펄럭여 도마뱀을 쫓아내고 응접실로가 잠겨 있던 트렁크를 열어 컴퓨터를 꺼냈다.
컴퓨터를 켜 글쓰기 어플을 열었지만 뭐부터 시작할지 막상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하아. 이 무기력함의 원인은 아파서일까? 어두워서일까? 혹은 인터넷이 되지 않아서? 책상이 없어서? 아니면 눈치채지 못한 무언가 내적으로 달라져 버린 것까? 나는 낯선 곳에 왔고, 사방에는 새로움과 아름다움, 친절과 부조리, 불합리, 불편이 천지인데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니. 쓸거리를 고민하고 뭐라도 쓰기를 어려워하고 있는 내 상황이 정말이지 답답한 심정이다. 여러모로 쿠바는 어렵다. 아니 어쩌면 내가 어려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쿠바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0년 대학원 시절이다. 나는 남미학을 전공하는 교수님이 쓴 짧은 쿠바 관련 논문을 읽고 공산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관심이 생겨 쿠바 인턴십을 준비했었다. 그 시절 내가 논문들 통해 알게 된 쿠바는 오랫동안 식민지였던 나라, 공산주의 혁명으로 남미에서 유일하게 공산주의 체제를 가지게 된 나라, 미국의 금수조치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 여행자용 화폐가 따로 있어 2개의 화폐를 쓰는 나라, 모두가 무료로 교육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고, 동시에 어떤 직업도 급여 수준이 높지는 않아 사람들이 관광업에서 돈을 벌고자 교수도 택시기사를 하고, 간호사도 매춘을 하며 달러를 버는 나라.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국가에서 키워주기 때문에 이혼율이 높고, 또 재혼율도 높아 서너 번 이상씩 결혼한 사람이 많은 나라 정도였다. 그 시절 나는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간의 파워 싸움이나 헤게모니, 이데올로기 등에 관심을 가졌었으므로 쿠바는 흥미로운 사례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결국, 언어 문제와 급여 이슈로 나는 쿠바행 대신 말레이시아 페낭행을 결정했고, (페낭이 쿠바를 대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둘 다 섬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플레이리스트에서 쿠바 음악을 지우고 동남아 여행 계획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17년 친구가 쿠바에 간다고 했을 때 다시 티켓을 알아보며 나는 쿠바에 카리브해와 올드카라를 키워드 두 개를 더 얹혀주었다.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 다음 해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나온 하바나를 보며 말래콘 석양과 살사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2020년, 캐나다로 장기 여행을 떠나겠다는 하메와 일정을 맞춰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티켓팅을 했다. 5월에 떠나는 그와 함께 돌아올 예정으로 10월 티켓을 1월에 샀건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들고 있던 티켓을 결국 9월에 수수료를 물고 취소했다. 어느덧 쿠바는 내게 왠지 가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쿠바에 대한 관심은 정치 경제 체제에서 관광으로 바뀌어 갔다. 2023년, 본격적으로 캐나다행 이야기가 다시 나오면서 쿠바도 함께 물망에 올랐다. 우리는 각자의 일정으로 캐나다행 티켓팅을 하고, 토론토에서 하룻밤을 자고 쿠바로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날이 다가오면서 그제사 하나 둘 알아보기 시작 쿠바의 이야기 중 가장 우려 되었던 것은 인터넷 사용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돌아다녀도 할 일은 해야 하는 디지털 노마드였고, 나는 뭐 예나 지금이나 방랑 여행자지만 디노마드와 오래 살다 보니 디지털화되어 디지털 기기 없는, 온라인 안 되는 삶이 조금 두려운 그런 여행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컴퓨터를 일주일째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심카드는 샀지만 30분 단위로 끊기는 인터넷 연결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하고 언택트로 살고 있다. 어차피 컴퓨터를 할 책상도 없는 숙소가 많았고, 쿠바에 도착한 이래 나는 늘 어딘가가 불편했다. (애당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여행을 시작함) 쿠바에 왔고, 열흘이 지났다. 나는 올 인클루시브 호텔에서 배 터지게 먹고 뒹굴며 책을 두 권이나 읽었으며, 에메랄드 빛 카리브해 바다에서 처음으로 구명조끼 없이 보트도 안 타고 4미터 바다까지 스노클을 하는 재미를 맛봤고, 며칠째 매일 1일 1 랍스터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온전히 쿠바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쿠바로 향해 가고 있는 기분이다. 아마도 내가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잘 정리해서 꺼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듯하다.
쿠바 생활 조각
#. 심카드는 25달러(USD)에 삼(4G). 근데 잘 터지진 않아서 수시로 껐다 켜야함. 시골에서는 3G도 잘 안됨. 인터넷 카드는 5시간에 250페소(약1.5달러)에 샀는데, 나중엔 125페소에 삼. 사실 모든 가격에 외국인 할증이 붙음. 와이파이 카드는 제한된 장소에서만 사용 가능.
#. 인터넷이 너무 느리고 접근을 막아놓은 페이지가 너무 많음. 앱스토어 안됨. 신규앱 다운로드는 꿈도 꿀 수 없음. Airbnb도 막아놔서 VPN써야 예약할 수 있음. 가지고 있는 앱의 1/4은 아예 안 켜짐;
#. (하바나를 제외한 지역은 어딜가나) 하루에 한번은 정전이 됨. 짧게는 2시간 길겐 약 6시간 정도 경험했으나 16시간 이상 정전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함. 모두가 정부가 의도적으로 에너지를 아낄려고 전기를 끊는 거라고 말하는데 날마다의 시간대중은 없음. 이래서 사람들이 무기력 해지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