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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 Libre. 무엇이 쿠바를 자유롭게 하려나?

100 days in America #2

by 방자

철제창 사이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쿠바에 와서 처음 있는 일이다. 특별히 좋을 것 없는 20달러짜리 방을 얻었지만 대낮에 실내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어서인지 왠지 모를 쾌적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오늘 500페소에 7G 정도의 데이터를 충전한 데에서 오는 안정감 같은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라데로에서 25달러에 심카드를 살 때, 충전은 20달러라고 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여기서는 500페소(약 3달러)만 받고 적잖은 양의 데이터를 받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운 좋게 외국인 물가가 아닌 현지인 물가로 무언가를 구매할 기회가 온 거라 이해했다. 이중경제의 사회에서 종종 만나는 일이다. 이중 질서의 복잡함은 예를 들어, 똑같은 데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데 나는 5유로를 낼 것을 요구받고, 잠시 후 옆 사람이 50페소(약 400원)를 내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게 되는 것과 같은 틈새를 보이고 결국, 실제 가격을 경험할 우연이 생기는 것 같은 민낯도 보인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지인이 쿠바가 디지털 노마드가 살기에 어떠냐고 물어 그저 디지털 디톡스하기 좋은 곳이다 정도로 답변한 기억이 있는데, 그건 공식적 답변이었고 비공식적으로 물었다면 디지털 노마드에게 쿠바는 HELL이라고 답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쿠바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쿠바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쿠바의 매력은 대부분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것에 비롯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그 매력을 깎아 먹는?, 혹은 더 돋보이게 하는 제도적, 체제적 불편함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 덕분에 내가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저 내가 지금 당장 불편하다는 거지 그게 나쁘다고 표현하긴 어려울 듯하다.


지난 사흘간 한 시골마을의 다문화가정(할아버지는 유럽계 브라질리안이고 와이프는 쿠바나. 두 번의 결혼으로 생긴 5명의 자녀들은 다 성장해서 출가하고 처제와 셋이 살고 있었음)에서 지냈는데, 쿠바에 20년 이상 산 Airbnb 호스트 Simon은 쿠바는 지난 20년 간 발전은 커녕 두 발짝 정도 앞으로 가면 네 발짝 정도 뒤로 가기를 반복해서 오히려 퇴보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쿠바 흉을 엄청 보셨는데, 아마도 함께 사는 가족들이 영어를 못하니 우리에게 더 열심히 흉을 보셨던 듯하다. 어느 측면에서는 할아버지의 불만이 이해도 되었다. 특히, 매일같이 경험하는 “정전"은 그게 정말 여기서 만난 모두가 말하듯이 진짜 전기가 부족해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부족한 전기를 아끼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기를 끊는 것인데 그렇게 예고도 없이 아무 때나 기간도 불확실하게 진행하는 거라면 (민주주의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그건 아주 부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불평 덕에 그러한 처사가 결국 카리브 해가 코 앞에 있음에도 신선한 해산물을 접하기 어려운 현 쿠바의 실정과 맞닿아 있다는 데 생각이 이르자 이건 폭력이지 싶었다. 할아버지는 쿠바가 체제적 특성상 식문화가 발전할 수 없는 곳이고 그래서 모두가 매일 똑같은 음식만 먹고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 본인에게는 그게 밖에서 하루 종일 풀을 뜯는 말의 삶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쿠바에 살고 있으니 할아버지의 불편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닐 듯싶었다. 사실 느껴졌다. 그럼에도 쿠바에 사는 이유가 와이프에 대한 사랑일까?(궁금)


쿠바에서의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자유를 외치고, 혁명으로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던 쿠바는 아직도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주민의 몰살, 식민의 역사, 미국 마피아의 천국, 단일 식물 재배로 인한 경제적 침체를 고려하면 이 아름답지만 아픈 나라가 현재에 이른 것이 그저 불운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도 싶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쓰이고 쓰린 구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편하게 하는 게 단지 “여행자"만은 아닐 듯싶다. 지난 나흘간 세계의 다양한 곳에서 요리사이자 매니저로 근무했던 할아버지가 신선한 카리브 재료로 만들어 주신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요리를 먹으며, 철제창이나 나무창이 아닌 유리창이 달린 집에서 잠을 자고 보니 포기했던 나의 미각욕구가 되살아 나며 이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음에도 누리지 못하는 자원에 대한 아쉬움, 수입품이 너무 비싸서 유리나 플라스틱 제품의 편리가 닿지 않은 수많은 생활공간이 주는 불편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사실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긴 이 집도 에어비엔비 설명과 달리 와이파이는 터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결국 그 이유로 잠시 만난 오아시스에서 나와 ETECSA(와이파이 카드와 심카드를 구매할 수 있는 쿠바 통신 회사)가 있는 리얼 쿠바로 돌아왔다.


에메랄드 빛깔의 카리브해 바다와 야자수. 알록달록 집들 사이의 힙한 올드카. 이런 대표적인 사진 속 쿠바는 그림같이 아름답다. 나 역시 수많은 그림 같은, 파라다이스를 연상시키는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쿠바의 “관광지”에서 딱 한 발만 더 “로컬”로 들어가면 보이는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카리브해, 트로피컬 기후, 낭만적인 색채의 집과 올드카, 아름다운 석양, 저렴한 럼과 칵테일, 나에게는 큰 의미는 없지만 유명한 쿠바 시가가 쿠바의 ‘명’이라면 오래된 차와 오토바이 매연, 낙후되거나 비포장인 도로의 매연과 먼지, 찌는 듯한 더위, 편안하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원한 카페 하나가 없는 현실, 전반적인 시설의 낙후와 노후, 외각으로 조금만 나가면 느껴지는 찐한 빈곤의 그림자와 차별은 쿠바의 ‘암’이라 하겠다. 우리가 하고 있는 쿠바 관광이 아니라 여행은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 괴리를 더 크게 느끼게 한다. 좋은 경험이겠지? 오늘 저녁에는 근처 식당에 가서 모히또나 한잔 하며, 무엇이 쿠바를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을 해 봐야겠다. 이런 게 여행의 낙일테니 말이다.


Playa Giron & Larga, Simon이 만들어 준 랍스타 저녁 / wifi 공원 옆 로컬 바 / 플라야 라르가의 오후

쿠바 생활 조각


#. 마트에는 물품이 매우 제한적으로 팜.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대형 마트는 본 적 없음. 마트는 카드 결제만 되는 외화 마트와 현금 결제 중심의 페소 마트로 나뉘는데 둘 다 제한적인 공산품을 위주로 취급함. 현지인들도 수입품을 사기 위해서는 달러(유로)가 들어있는 카드 결제를 해야 하는게 현실. 그 이유로 늘 은행이 붐비고 좋은 가격에 불법 환전해 주겠다는 쿠바인이 넘침. (단지 그 이유는 아님, 작년 한 해 살기 힘들다고 쿠바를 떠난 사람이 2.2만 명, 전체 인구의 2%가 넘는다고 함. 출국을 위한 달러 확보도 한 몫 하는 듯 함.)


#. 환전을 잘하는 것이 쿠바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중 하나. 달러와 1:1 환율로 교환되던 CUC (여행자용 화폐)는 2021년 1월 기준으로 폐기됨. 현재 쿠바 은행가에서 CUP의 공식 환율은 1달러에 110~120페소인데, 실제 거리에서는 150에서 180페소에 거래되고 있음. 100달러 환전 시 3000페소 이상 차이가 날 수 있음. 훌륭하게 요리된 랍스타 디너를 먹을 수 있는 가격임.


#. 랍스터가 쌈. 어딜 가나 외국인에게는 랍스터 메뉴를 많이 추천함. 랍스터요리 가격은 1마리 기준 약 7000원(1000페소)에서 2만원(2500페소) 원 사이임. 정전이 안 되는 아바나나 바닷가 마을 근처에서는 신선한 랍스터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음. 시골의 작은 식당에서는 냉동고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 질긴 랍스터를 먹게 될 수 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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