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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 사회주의 아니라 전제정치

100 days in America #3

by 방자

하바나에 도착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비가 오기 시작했다. 길에서 만난 쿠바사람은 겨울(우기)이 시작되었다고 말해줬다. 하바나에서 만난 사람들은 비교적 친절했고, 인사를 잘 나누었고, 호객을 많이 했다. 삼일 정도 날이 매우 쌀쌀해서 긴팔 긴바지를 꺼내 입었었다. 이게 쿠바의 겨울인가, 이렇게 날이 확 변하는가 싶었다. 나흘 째 되던 날 해가 비추기 시작하더니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의 뜨거운 태양이 낮을 데우고, 그늘을 찾아 매연 뭍은 바람으로 무더움을 달래야 하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쌀쌀했던 며칠 동안만 하바나에 다녀간 사람이 있다면, 아마 하바나를, 쿠바의 겨울을 오해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금 더 있는다고 한 도시의 복잡한 문화를, 사회성을,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새롭게 쌓이고 있는 경험들 속에서 무언가가 내 인지나 고정관념에 틈새를 만들고 새로운 관념들과 함께 재정렬 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또한 하나의 편견 쌓기에 지나지 않을 듯도 하다. 그래도 이해를 더해가고 있는 거겠지?


여행을 하면서 만난 쿠바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씁쓸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그렇게 표현했다. 쿠바에 여행 온 우리에게 쿠바가 어떠냐고 물었을 때, 쿠바가 좋다고 하면 열에 여섯일곱은 정말 그러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고, 아바나의 첫 숙소에서 만난 관리인 카를로스 역시 우리에게 ‘남한에서 왔다고? 그렇지 북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없지? 난 북한에 살고 싶진 않아. 그보다는 쿠바인으로 사는 게 낫지.’라고 말하곤 3주간 쿠바를 다니며 어땠냐기에 한국인의 예의로 ‘좋았어.‘라고 말하는 내 말엔 그럴 리 없다는, 혹은 내가 솔직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하바나의 두 번째 숙소 호스트 롤리도 현재의 쿠바 시스템을 비판하며 그게 소셜리즘이야라고 수차례 반복해 말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말을 걸던 끝은 본인들의 경제적 이득을 위한 호객으로 말을 맺었다. 종종 너무 적게 벌어서 버는 돈 만으로 살 수가 없다거나 키워야 할 애들이 여럿이다라는 핑계를 대며 호객에서 구걸로 넘어가기도 했다. 호객 품목은 대부분 시가나 환전, 택시, 음악클럽이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말 거는 모든 사람에 대한 편견의 눈초리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눈초리 덕에 말을 빨리 끝내거나 중도에 포기하고 가 버리는 경우는 있어도 그 외의 순수한 호기심의 경우가 1%가 안 될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 게 편견을 굳이는데 한몫하고 있다.


나는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 한 개씩 와이파이 공원에서 어렵게 다운로드한 쿠바리브레를 보며 쿠바의 혁명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쿠바는 고래싸움(미국 소련의 헤게모니 전쟁)에 등 터진 새우이고, 자아도취에 빠져 영웅놀이를 하던 피델이 죽고 나서도 터진 등은 아물지 않아 쿠바의 국민들은 상처 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 다른 도시를 다니면서도 그리고 하바나에 와서도 자주 가게 앞 혹은 은행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마주치곤 했다. 우리는 나름에 상상력으로 배급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럼에도 은행의 긴 줄이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그러한 시스템적인 것들을 하바나에서 만난 조금 더 영어를 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상점 앞의 사람들은 자신의 순번에서만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식료품 혹은 생필품 구매를 위한 줄이었고, 은행의 줄은 외화 카드로만 결제가 되는 상점 이용을 위해 저금을 위한 줄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한 건데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 현지인들도 설명을 어려워하고, 실제 잘 살기 위해선 스스로도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인 듯했다. 쿠바는 갑작스러운 물가 인상, 통화 개편, 제한적인 물자 조달 등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람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거 같고 사람들의 말뿐 아니라 올드 하바나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2X2=5?를 포함한 그라피티도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한 남미의 공산국가로서 쿠바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로서 명성을 가졌던 쿠바는 사실 혁명으로 쟁취한 이상적인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아마도 피델은 공산주의가 알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이해하거나 공산주의자로 산 적은 없던 것 같다. 그의 행동,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이 나라의 현실을 볼 때 그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간판으로 내걸고 전제 정치를 한 독재자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하긴 사실 자세히 보면 미국과 소련의 이념 전쟁도, 유럽의 종교 전쟁도 실상은 그저 있는 자들의 권력 다툼, 헤게모니 전쟁이었지 관념은 핑계였음을 생각하면 뭐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콜럼버스 발견 이래, 기록이 있는 전부가 식민의 역사였다고 할 만한 쿠바의 역사에서 핵심 무역 작물은 커피(동쪽 산티아고 지역), 시가(서쪽 비냘레스 지역), 사탕수수/럼(중부 지역)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한때 미국으로, 소련으로 무역하던 핵심 작물이자 단일무역 작물이었던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을 쿠바는 현재 브라질에서 수입해서 쓰고 있다고 한다. 소련에 이어 베네수얼라의 원조도 끊기고, 그 돈의 40% 이상을 군대와 정보부 관리에 쓰느라 산업 발달을 소홀히 한 결과, 쿠바의 발전은 1960년대에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고, 국민들의 삶은 궁핍해졌다. 외적으로는 항시 미국을 주적으로 두고 있었지만, 사실상 쿠바는 늘 미국 경제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달러로만 구매할 수 있는 샵들의 성행은 결국 사람들을 쿠바 밖으로 내몰거나, 밖에서 가족을 위해 돈을 보내게 하거나, 그도 아니면 관광객에게 호객을 해서 달러를 벌거나 얻을 기회를 만들 수밖에 없게 한다. 쿠바에서는 외화를 얻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의 질이 조금만 자세히 관찰하면 눈에 보일 정도로 다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중국인이냐, 일본이 이냐를 물으며 시작해 결국은 환전, 택시, 살사클럽 등의 호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 밖에 나가기가 부담스럽게 하는 그들을 외면할지언정 짜증의 마음조차 가질 수가 없다.


지금의 쿠바는 팬데믹 이후, 관광업의 큰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히론의 요리사 할아버지 사이먼이 말한 두세발 앞으로 가다가 네다섯 발 뒤로 간다던 후진의 시기에 있는 듯하다. 이렇게 가다 그냥 참고 넘어가기에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사람들은 또 뗏목이라도 타고 미국으로 향하거나 새로운 혁명을 계획하거나 하는 변화의 길을 틀지도 모르겠다. 이미 작년에 20만 명 (전 국민의 2%)가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쿠바는 파란 카리브해, 커다란 나무들, 야자수, 노래하는 새들, 귀여운 벌새, 아름다운 석양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쿠바인들은 그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가 없다. 쿠바 여행은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의사결정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었다.


Old Havana, 상점 / 책방 / 올드카


Not Old Havana but older, 주거지역 / 벽의 그래피티 / 밤 풍경



# 쿠바에 오기 전 하바나하면 생각났던 것

말레콘 석양, 시가, 올드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공산주의, 체게바라.


# 지금 하바나하면 생각나는 것

고양이, 개, 길거리 똥, 인력거, 빈집, 깨진 도로, 환전/시가 호객꾼, 하바나클럽 럼, 짠 음식, 예쁜 하늘, 말레콘 석양, 매연, 새벽까지 들리는 소음과 시끄러운 음악, 클럽, 경제적 어려움, 수도는 그래도 정전이 되지 않음, 피델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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