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days in America #4
쿠바의 마지막 날 아침, 짐을 모두 싸고 베다도에서 즐겨 찾던 채식식당에서 남은 돈에 맞춰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은 팥케이크에 양념김치 같은 것이 약간 매콤하니 맛을 낸 메인과 달달한 팥 에너지볼, 야채만두 튀김을 선택했는데, 다들 참신한 맛이었다. 당근/파인애플 주스에 에스프레소로 까지 나름 든든하게 한 끼를 하고 작은 물 하나를 사고 나니 딱 100페소가 남았다. 만족스러운 아침이었다. 날도 좋고, 새소리도 들리고, 매연은 심하지만 파란 하늘과 커다란 나무들, 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 개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종종 쿠바가 생각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선 여행의 마지막이 하바나의 신도시 Vedado인 게 다행이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공항에 데려다 주기로 한 올드카 투어를 해 주었던 헥토르가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로 올라가 바지런히 준비를 하고, 1952년에 생산되어 2005년에 쿠바로 넘어온 쉐보레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옆차의 매연이 거슬렸지만, 종종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눈을 감고 바람만 즐기려 노력했다. 안녕! 파란 카리브 바다, 푸르고 큰 나무들, 만날 때마다 반가웠던 벌새들, 밤마다 길을 지키던 고양이들 잘 있어! 매연, 소음, 호객도 모두 굿바이! 계획대로 출발 3시간 전인 11시에 공항에 도착해 충만한 기분으로 헥토르와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들어서 항공사 카운터를 찾았다. 그런데 전광판, 카운터, 심지어 오피스에서도 내가 예약한 AEROMAR 항공사나 항공에 대한 어떤 정보도 보이질 않았다.
공항에서 미아가 되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20대에 카타르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쳐 2일간 억류되어 있던 기억이 났다. 호주 공항에서 출국 항공편 이슈로 울화기 치밀었던 일도. 아, 문명화된 21세기 사회에선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이런 일들이 아직도 내 인생에 남아있었구나. 한참을 손바닥만 한 공항을 돌고, 헤매고, 묻고 한 끝에 예약했던 그 항공사가 약 한 달 반 전 도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두 달 전에 예약을 했는데 예약 후 단 한통의 메일도 받지 못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 중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저쪽으로 가보란 이야기를 댓 번 이상 들었고, 저기에는 다른 저기가 존재하거나 잘 모르겠다가 존재할 뿐이었다. 과거의 공항트라우마가 올라오려고 울렁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황하다 우리 같이 방황하는 독일 커플을 만났고, 그들에게 추가 정보를 얻어 결국 타인에게 문제해결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결론에 이르러 저녁 6시 반, 앞으로 6시간 후에 출발하는 다른 항공편을 재예약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100페소로는 살 수 있는 것도 없고, 실상 돈이 있더라도 딱히 살 것도 없는 공항에서 6시간 동안 대기를 하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은 상점 중 ⅓ 은 매대가 비어 있었고, 카페에서는 카드를 받지 않았다. 우리는 술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 카드로 맥주 2병과 땅콩 하나, 물 하나를 사서 자리를 잡았다. 하메는 이번 여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고 그의 말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관념이 부정적으로 자리 잡힌 것 같아 나는 “주의"는 잘못이 없다. 피델은 전제정치를 한 독재자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선 제대로 이해도 못한 것 같다며 정정했다. 여기와 보니 그 선전에 전 세계인이 놀아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이야기로 시작해 둘이서 쿠바의 정치에 대해 신나게 왈가왈부 이야길 했다. 뭐 할 일도 없으니까… 종종 사람들이 쿠바에서 정부를 욕하면 잡혀간다고들 했지만 어차피 이들은 한국어를 못한다. 정치 이야기 하면 철컹철컹한다던 쿠바 사람들, 길에서 돈 바꾸는 게 불법이라 잡혀간다면서도 다들 “change money?”를 묻던 사람들, 친절하고 친근하지만 외국인은 돈벌이 대상으로 보는 쿠바 사람들이 생각났다. 나도 쿠바가 준 교훈이 쉽게 잊힐 것 같진 않다. 전제정치가, 의사결정권을 1인이 가지고 있는 독재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명확하게 알겠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이라는 이념으로 선전해 온 피델은 내 마음속에선 이미 악덕 독재자 딱지를 붙였다. 그는 죽고, 그의 동생도 정권을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1 당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 사회는 말도 못 하게 세상에 뒤처져 있다. 나는 이것이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결과로 비치는 게 씁쓸하다고 생각한다. 이 결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자 사람의 문제이다. 실상 혁명이래 쿠바의 주적이었던 미국의 영향권 밖에 있던 적이 없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래간만에 정치 공부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현 쿠바 정부는 무엇이 가능하게 하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게 하는데 돈을 쓰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며 시시때때로 의도적 정전을 발생시킴으로써 돈 있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들이 발전기를 사고, 전기를 축적해 놓는데 추가적으로 비용과 시간을 쓰게 하고, 인터넷을 막아 (신규 앱 다운로드가 아예 안됨, 기존 앱들도 제한적으로 접근 가능함) 국민과 여행자의 정보를 정보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을 더디게 하고 우리가 VPN을 깔아 해외접속으로 꾸며 에어비엔비 예약을 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게 하는 등이다. 피델은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을 보호하고, 국민을 우롱했으며 그가 사라진 이후에도 악습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쿠바를 여행하면서 나는 종종 필리핀, 캄보디아, 알제리가 생각났다. 정권의 부패, 통제가 결국 국민의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결국 국민이 “객”을 단지 “돈”으로 보게 함으로써 나쁜 관계를 형성하고, 악명을 얻고, 사람들이 찾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 더 이상 생존이 어려워지거나 결국 국민도 떠나고 싶어 하는 그런 비참한 결과가 비슷하게 보였다. 우리가 만난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쿠바 사람의 80% 이상이 외국인을 외화벌이 대상으로 본다고 느꼈다. 번화가를 1시간만 돌아다녀도 대여섯 이상의 말 거는 쿠바인들을 만난다. 짜증 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여건을 알면 그들을 탓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구매를 위해 달러가 필요하고 해외에서 송금해 주는 이미 쿠바를 탈출한 가족이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쿠바 국민이 달러를 구할 길은 외국인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상점에서 생활용품, 생필품을 달러로만 팔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니 말이다.
내 생에 쿠바가 다시 올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게 언제든 ‘우와, 정말 이렇게 변했다고? 진짜 살기 좋아졌네.‘라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한마디 뱉을 수 있길 바라본다. 하지만 지난 60년간 거의 변하지 않은 쿠바의 사진을 봐 버린 탓에 한편으로는 내 바람이 그냥 맘 편히 자고 내뱉는 헛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쿠바 여행은 끝났다. 우리는 칸쿤으로 간다!
쿠바 생활 조각.
#.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최소 30분은 기본, 1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음. 빨리빨리 하는 자신의 한국인 성질을 확인할 수 있음. 반면, 식사가 끝나자마자 아주 재빠르게 접시를 치움.
#. 벌새(colibri)가 많이 살고 있음. 자세히 나무를 관찰하다 보면 시골을 물론 도시에서도 벌새를 종종 만남. 종류도 다양함. 쿠바에서 벌새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실제 경험함.
#. 과일은 주로 청과 시장에서 살 수 있음. 계절에 따라 라임, 망고, 구아바, 바나나, 파인애플, 파파야, 과나바바, 샤워솝, 아보카도, 패션프룻, 스타애플, 체리모야, 마메이사포테를 등 다양한 과일을 접할 수 있음. 개인적으로 스타애플, 체리모야, 마메이사포테는 쿠바에서 처음 먹어봄.
#. 쿠바에서 럼 맛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럼이 테킬라나 진에 비해 가성비 맛과 향이 좋다고 느낌. Black Tears dry spiced Rum(한 병에 약 10달러), Havana club seleccion(한 병에 약 50달러)는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술임. BACARDI는 의외로 쿠바에서 보긴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