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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

프롤로그

by 방자

벌써 집을 떠나온 지 반년이 넘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태국 방콕과 치앙마이, 호주 골드코스트, 뉴질랜드 북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시베리안 횡단 열차, 핀란드 헬싱키, 에스토니아 탈린, 독일의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프랑스의 파리. 7개월이 넘는 긴 시간 동안의 타지에서의 삶이었지만 사실 나는 대부분 아늑했고, 안전했다. 순간순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도,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도, 짜증 나는 차별도 없진 않았지만 나는 그것들이 도시에서의 삶보다 힘들거나 쳇바퀴도는 삶보다 무섭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은 낯선 세계로의 여행보다 낯선 이(함께 여행하고 있는 남자 친구, 앞으로 비라 부르겠음)에게로의 여행에 가까웠다. 처음으로 타인과 함께 장기여행을 하며 30년 넘게 함께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어쩌면 몰랐으면 나았을지도 모를 혹은 진작 알았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싶은, 나의 다양한 면을 보았다. 여태껏 여행자라 그렇게 자부하면서도 제대로 된 사람 여행 한번 못해봤던 내가 참으로 한심스럽단 생각이 들 만큼 그것은 분명 내 삶에 있어 새로운 영역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혼자 하는 생각일지도 모르나) 우리에게 약간의 신선한 바람, 새로운 공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 시점, 우리는 낯선 곳으로 간다. 알제리, 나는 그곳의 기록을 최대한 촘촘하게 남기기로 결심했다. 긴 여행 중 알제리만 여행기를 쓰기로 한 건, 긴 여행 내내 여행기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아 시작하지 못해서 이기도 했고, 세계 곳곳의 정보와 감성을 잘 녹여낸 여행기들을 보며 더 잘 쓸 수 있을 거 같지 않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알제리 여행기는 별로 없다. 그래서 불현듯 알제리 여행기를 한 달간 정성껏 써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 달 쯤이야'라며.


알제리는 살면서 한 번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나라이다. 사실 십 대 후반부터 여행자를 자처하며 살았지만 내게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얼마나 떠나 있느냐가 핵심이었으므로 나는 생각보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지 않다. 그저 누군가 어디를 멋지게 이야기하면 거기 가봐도 좋겠다 생각할 뿐. 그래서인지,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정한 비가 가보고 싶은 나라 세 곳과 내가 가보고 싶은 나라 세 곳 중, 그가 가보고 싶은 세 곳은 알제리를 마지막으로 모두 방문하게 되는 것이지만 내가 가보고 싶다고 했던 세 곳은 아직 근처도 가지 못했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못 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들 뭐 어떠하리...라는 게 내 사고의 흐름이랄까.


아무튼 비의 알제리를 가겠다는 선택과 받기 어렵다는 비자를 준비하는 집요함으로 우리의 알제리 행은 확정되었다. 알제리라니.. 당신은 알제리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나는 사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알제리에 뭐가 있지? 그가 사하라 사막의 대부분이 알제리에 있다는 이야길 하고 나서야 난, 어린 왕자사막여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내 머릿속에 있는 알제리의 대표 이미지이다. 혹시라도 금발의 대답을 거절하는 아이를 만나게 될 확률이 있을까? 그럼 나는 그에게 너의 친구도 오래전에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고 말해줄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설렌다. 고로 알제리는 설렌다. 아, 알제리가 세계에서 10번째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영 검색으로는 알제리의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흥미롭지 않은가? 요즘 세상에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교통정보 검색이 되지 않는 나라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여행이 퍽이나 아늑하고 안전하게 된 데에는 바로 그 검색이 있었다. 10년 전 여행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정보의 홍수는 어디든 도착하기 전에 기본으로 숙소, 교통, 문화, 도시의 특색 및 볼거리, 위험요소, 감상에 대한 정보까지 한아름 안겨줬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큰 도전도 어려움도 생기지 않는 여행을 하게 된 것 같다. 기본 여행자 가닥에 정보까지 합쳐졌는데 뭤이 두려우랴.. 그런데 정보가 없는 나라라니. 훗. 설레는구먼. 그래서 여기 여행기를 시작한다. 부디 내가 실시간 정보를 올릴 수 있을 만큼의 인터넷 환경이 뒷받침되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알제리로 간다.



알제리 여행기간 : 2016년 8월 18일 ~ 9월 15일


<표지 사진 : 마치 사하라 사막일 것 같지만, 실은 뉴질랜드 북섬 최북단에 있는 Ke paki 모래언덕. 아직까지는 직접 찍은 알제리 없어 표지로 씀>



다음이야기 : 헬로, 알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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