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매연, 소음, 능숙하지만 수가 얕은 사기의 손길, 끝이 없는 듯한 인파, 그리고 혼을 쏙 빼놓을 듯한, 그래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게 되는 혼란스러움, 길거리의 소 떼. 뭄바이는 처음이지만 이 곳은 분명 내가 아는 그 인도임이 분명하다. 나는 더럽고, 정리되지 않은 이 도시가 달갑지는 않지만, 딱 2년 만에 다시금 인도에 와 익숙하게 무단횡단을 하고, 사람들의 얕은수에 미소를 지어 보일 있는 나의 여유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 어매이징 한 나라는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내가 긴장을 놓지 않게 새로운 서프라이징을 준비해 두었다(나 중심적 사고).
화폐개혁!
이 얼마나 역사책에나 나올 듯한 의미심장한 단어인가. 나는 운 좋게(?) 인도의 화폐개혁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접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인도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은 아니다. 이른 새벽 도착한 뭄바이 공항 환전소에는 의아스러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그걸 보고도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인도가 나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으므로 그저 그러려니 했다. 나에게 바꿔줄 돈이 없다고 했을 때도, 결국 7,000원가량의 수수료를 내고 2,000루피(35,000원가량)를 뽑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게 주어진 최선의(거의 유일한) 옵션이란 사실을 인지한 아침까지도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시내의 시티은행에 가면 저렴한 수수료에 돈을 찾고, 풍족한 인도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이렇게 이틀 내내 은행을 찾아다니며 루피를 구하려 노력하다가 결국은 나의 모든 정보를 까고, 주당 환전 최대한도 5000루피라는 종이에 사인을 하고, 말도 안 되게 나쁜 환율에 돈을 환전하는 화 뻗치는 일이 벌어질 줄 상상도 못 하였다. 뭄바이의 대부분의 ATM기에는 돈이 씨가 말랐다. 한결같이 “Out of Service / No money" 딱지를 얼굴에 붙이고 있다. 인도 정부는 화폐를 개혁하겠다며 갑작스레 500루피, 1000루피의 회수를 결정했고, 동일 금액의 새 화폐와 교환이 아닌 세금 면제의 방식으로 모든 돈을 회수하고 있다. 그 둘을 대신하는 돈은 2000루피짜리 새 화폐이다. 지하경제를 잡고, 세금을 거둬들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인도의 이번 화폐개혁은 신문상에서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기존의 2~3배 이상의 세금이 걷히고 있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의 불편함과 암담함은 말할 것도 없고, 카드를 받는 곳이 많지 않은 나라에서 쉽사리 구해지지 않는 현금을 비싼 환율에 말도 안 되는 싸인까지 해가며 바꿔야 하는 여행자의 입장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건 분명 내가 싫어하는 인도식 사기처럼 느껴졌지만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국가가 장려하는 고도의 사기극이다. 아, 정말이지 현실 세계의 정부의 의사결정이란... 여러모로 알면 알수록 드라마틱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써 버리는 통에 과연 현실보다 더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초짜 글쓴이로서는 초라해지는 느낌을 떨쳐 버리가 어렵다.
그래도 나는 이틀 동안 하루 꼬박 A4 1장 이상씩의 글을 썼다. 지난 며칠 내내, 글의 주인공이 주인공인 꿈을 꾸었는데, 그 이야기가 흥미진진해 아! 그렇게 쓰면 되겠다 하다가도 아침이 되어 그 이미지와 상황들을 글로 옮기려고 하면 뭔가 꼬이는 것 같은 데다 이야기가 충돌되어서 아직은 어찌 풀어가야 할 줄 모르겠지만. 그저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을 열심히 적어가며, 일단 꾸준히 분량을 채우는 것과 내가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고민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가난한 인도 생활이 시작되었다(현금이 수중에 별로 없는 데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심적으로 가난한 느낌이 듦). 반성해보건대, 내가 시대의 산물인 이성과 합리적 사고에 익숙해져 아직까지 너무 한계적인 사고와 상상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런 비상식적 방법을 쓴다고 판단되는 인도 정부에 짜증이 나는 듯하다. (어쩜 그냥 너무 더워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누구나 상상 가능한 범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만 벌어지는 그런 뻔~한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닌데. 이번 글쓰기를 통해서 이걸 꼭 깨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설이니까. 인도에서 쓰는 거니까.
우리는 오늘 밤 야간 슬리핑 버스를 타고 고아로 간다.
<2016.12.02. 뭄바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