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넷
우리 집은 스리랑카, 탈페, 마타라 로드에 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지낼 예정이다. 흐뭇하다. 집이 생겼다는 기쁨은 한동안 집 없는 길 위의 삶을 산 후에 더 크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번 집은 옥상에서 바다가 보이고, 방에는 작은 냉장고가 있고, 걸어서 5분이면 첨벙 뛰어들 수 있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이다! 내가 가지게 된 것이지만 글로 쓰고 나니 설렌다. 불현듯 쓰다 멈춰버린 소설이 생각났다. 두 여행자의 집, 두 여자가 여행을 통해 자신이 이상하는 집(HOUSE 말고 HOME의 의미에서)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이제 집이 생겼으니 매일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 그녀들의 집도 찾아주고,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해야지~ 신난다! 지난 사흘의 수고가 보상을 받은 듯이,
마치 내게 새로운 날이 준비되어 있는 듯이.
인도 벵갈루루 공항에서 스리랑카 네곰보에 있는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채 1시간 반이 걸리지 않는다.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기다림의 하루가 거의 지난, 밤 11시쯤이었다. 나는 인도의 눈물이라 불리기도 하는 스리랑카가 인도와는 당연 (법적으로) 다른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경험적으로) 어떻게 다를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다름은 공항에서부터 나타났다. 스리랑카는 여행자에게 친절한 (혹은 쉬운) 나라이다. 공항에서는 늦은 시간임에도 환전소, 통신사, ATM 등 여행자가 필요로 하는 기본 시설들은 모두 이용이 가능했다. 작지만 이용이 편리한 구조이다. 우리는 환전을 하고(모든 환전소는 동일 환율로, 시내 은행과 비교해도 좋은 편임), 심카드를 샀다(Airtel, Mobitel, Dialog는 지역별로 잘 터지는 게 다른 편이나 Dialog가 가장 보편적이고 통신이 잘 되는 듯함). 공항에서 수도이자 숙소가 있는 콜롬보까지 30Km 정도. 물론 많은 택시 기사들이 버스는 끊겼다며 택시를 타라고 다가왔지만 이 곳에는 밤새도록 사람이 차면 운행하는 버스가 대기 중이라는 사실을 공항에서 이미 접한 터이다. 다음날 은행에 갈 때도, 밥을 먹을 때고, 비자 연장을 하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한 기차 편을 알아볼 때도 모든 것이 인도보다는 한결 수월하고 쉽다. 여기나 인도나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다고 생각하지만, 스리랑카에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거나 장난을 치려는 사람이 한결 적은 편인 것 같다. 정보를 찾기도 쉽다. 인도보다 어려운 것은 더 뜨거운 햇살, 아쉬운 것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먹거리뿐이다.
인도 일정의 단축으로 우리의 스리랑카 일정은 한 달에서 한 달 반으로 늘어났다(한국행 티켓은 1월 31일 밤 콜롬보 출발로 발권되어 있음). 우리는 최대한 빨리 도심지를 벗어나 시골에 가서 한달살이 방을 구하기로 했다. 연말인지라 자칫 방 구하기의 어려움과 가격 상승을 경험하게 될 확률이 높아서이기도 했고, 인도의 고된 나날들을 빨리 털어버리고 안정된 환경에서 글을 쓰며 여유로운 날을 지내고 싶기도 해서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일찍 일어나 은행에 들려 현금을 인출하고 비자 연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국 비자과를 찾았다. 사실 비자 연장의 경험에 대해선, 행정은 어쩔 수 없는 거냐며 그 비효율을 지탄하고 싶지만 아직 경험이 제한적임으로 자제하기로 하고 나의 경험만 말하자면 5시간의 기다림 끝에 비자를 받았다. 누군가 내 질문에 답만 해줬더라면, 그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추운 곳에서 닭살 돋아 가며 기다리지 않고 나갔다 와도 되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오랜만에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더라면 직원들보다 늦게 퇴근하게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당일에 비자 연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한 일이다. 꼬박 한나절을 정부시설에서 보냈지만 그래도 하루 만에 심카드 구매, 현지화 인출, 비자 연장 등 콜롬보에서 해야 할 건 다 해결했다.
이튿날 아침, 기차를 타고 스리랑카 남부 갈레(Galle)와 마타라(Matara) 사이에 있는 윌리가마(Wiligama)라는 작은 마을로 이동했다.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마을이다. 여기서부터 갈레까지 가는 사이(약 30Km 거리)에 있는 동네 중 한 군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윌리가마에 도착해서 일단 하루 머물 집을 구해 짐을 풀고 나와 점심을 먹자마자 스리랑카 친구(?)가 생겼다. 길가에서 우리에게 한국어로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은 툭툭 기사 나말은 오토바이 렌탈과 집 구하기를 도와주었다. 한국에서 3년간 일을 했었다는 그의 말에 혹시 나쁜 경험을 하진 않았을까,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는 힘들었지만 한국 경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고 진심 우리를 도와주려 노력하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동네에 한국에서 일하고 온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제각각인 듯했으나 외국의 작은 동네에서 그렇게 여럿의 한국에 대해 알고 한국어를 하고 한국인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는 게 흥미로웠다(우리에게 집을 보여준 아주머니들 중에는 남편이 한국에서 일하고 온 집도, 남편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집도 있었다). 보아하니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 돈을 벌어와 툭툭을 사 택시기사를 하거나 집을 짓고, 숙박업이나 레스토랑을 시작하는 하는 게 스리랑카에서는 흔한 일 같았다. 아무래도 이 바닷가 마을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자영업이 가장 돈벌이가 되는 거 같았으나 그건 자본이 필요하지만 현지에서 조달하기 어려운 부분일 듯도 했다. 우리는 서퍼 여행자들이 많은 윌리가마와 미드가마의 물가가 비교적 높은 편이라는 생각에 다음날 기차로 2 정거장 거리에 있는 옆 마을 탈페(Talpe)로 이동해 그곳에서 집을 구하게 되었지만, 세 개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집을 구하는 경험은, 그리고 집 구하기를 도와주려 노력해준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리랑카 라이프 시작!
<2016.12.17. 스리랑카, 탈페 새로 생긴 달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