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여섯
하나. 크리스마스이브, 와인 반 병에 일찌감치 곯아떨어져 버린 나는 크리스마스 아침 동이 트기도 전 눈을 떴다. 충분한 숙면 덕인지 이유 없는 크리스마스의 설렘인지 다시 잠들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나 때문에 뒤척이는 한 사람의 눈치가 보여 여명이 기운이 느껴지자 마자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로 나섰다. 아직 아무도 찾지 않은 아침 바다에 막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태양을 바라보며 그 속으로 홀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조금씩 더 크게 심장이 뛰는 소리가 느껴진다. 상상이라면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에 설렐 것만 같은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에 가깝다. 나는 무엇을 담고 있는지 모르는 저 바다가 무섭다. 섬에서 자랐고, 물고기, 조개, 굴, 성게, 소라, 게 등 기회만 되면 온갖 바다 생물들을 직접 채취해 먹는데 행복을 느끼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바닷물에 몸을 맡기는 것이 진심 두렵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1년 넘게 배웠지만, 내 수영은 파도와 짠물엔 사족을 못쓰는 바다에선 쓸모없는 기술이다. 내가 이 바다에 들어가는 유일한 이유는 바닷속에 예쁜 물고기들이 살고 있음을, 내가 동경하는 예쁜 해초들의 세상이 펼쳐져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평소 물 속에 모래만 있는 그런 바다는 잘 들어가지 않는 편이다. 무서운데 볼 것도 없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와서인지 썰물 때인건지 평소보다 수심이 낮게 느껴졌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구경하다 그들을 따라 조금 더 멀리 바위들 사이로 가 봤다. 평소에 보던 물고기들보다 더 크고 독특하게 생긴 물고기가 보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헉, 근데 여기 깊다. 스노클링 안경에 조금씩 서리가 차더니 점점 시야가 뿌옇게 느껴졌고 튜브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곧 짠물을 먹을 것만 같다. 그 고통스러움이 생각나자 덜컥 겁이나 허우적대다 진짜 짠물을 눈 코 입으로 흡입했다. 괴롭다. 살려줄 사람도 없음을 알기게 필사적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어떡하지? 그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음의 두려움을 뚫고 나와 내가 선 곳은 사실 발이 닿지 않던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아무도 몰래 나는 혼자 너무 괴로워하며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경험을 했다. 막상 살고나자 채 일분 전, 그렇게 물에 빠져 죽을까 두려워 허우적대던 내가 우습다.
둘. 집 앞에서 고을에 가는 로컬버스를 잡아탔다. 버스에는 거의 항상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눈들이 있다. 우리 동네는 그렇다 쳐도 우나와투나(Unawatuna)나 고을(Galle)은 외국인이 적잖은 동네인데 나는 그 시선이 ‘로컬버스를 타는 외국인’에 대한 신기함인지, 상대적으로 찾기 어려운 ‘아시안계 외국인 여행자'에 대한 신기함인지 아니면 원래 다들 그런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가진 것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몇 정거장 후 버스에 올라 우리의 앞자리와 옆자리를 차지한 세 청년 중 하나가 우리를 자꾸 쳐다본다.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냐고 묻는다. 일행에게 스리랑카 말로 뭐라 뭐라 하더니 파란 캡슐 약 세 개를 받는다. 두 개를 자기 입에 넣고 꼴깍 삼키더니 크리스마스 파티란다. 남은 알약 하나를 손에 들더니 우리에게 먹어볼 테냐고 묻는다. You will see something New! 나는 그 말에 먹어본 적 없는 저 약이 뭔지 알 것만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과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 우리는 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떠날 때까지 질문에 답을 하며 같이 걸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갑자기 매트리스의 빨간약과 파란약 생각이 났다. 만약 저 캡슐을 먹었다면 나는 어떤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을까?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상상이 펼쳐졌다.
그러다 불현듯 든 생각! 아침에 바다에서 겪은 앞이 보이질 않자 덜컥 겁이나 허우적대다 죽을뻔한 경험과 스리랑카 청년이 주려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준다는 파란 약은 우리가 가지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좋은 소재 같다. 이것들을 좀 더 다듬어 소설의 에피소드로 넣어보고자 간단히 노트에 적었다. 이건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산타가 내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돌아가서 글을 써야지! 결심과 달리 고을에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어려움이 겹쳐 크리스마스를 글을 쓰며 마무리하지 못하고 피곤과 술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지만, 밤새 선물이 멀리 도망가진 않았다. 나는 아직 그녀들을 위한 이야기 재료를 기억하고 있다.
<2016.12.26. 우나와투나 바리스타 카페에서 스리랑카 첫 아이스커피를 마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