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열
어느덧 스리랑카의 마지막 날이다. 아니, 긴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지난 이주 동안 바삐 돌아다니면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쓰지 못했다. 책상도, 의자도, 인터넷도 없는 환경에서 매일같이 밖을 나돌고 이동을 하는 틈틈이 독하게 맘을 잡고 글을 쓸 만큼 나는 의지가 강하지 못하다. 소설 쓰기도 멈추어 버렸다.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길이 이끄는 대로 열심히 방랑하고 있을 뿐이다.
(탈페) 집을 떠나 (고국) 집으로 가는 길에 잠깐 스쳐가는 듯한 길 위의 삶은 정확한 기약 없이 떠돌 때보다 훨씬 더 달고 쓰다. 기묘하게도 그 단맛은 여행의 출발에 느낀 자유의 단맛보다는 곧 만나게 될 그립고 익숙한 그 문화를 누리는 상상에 대한 단맛이고 그 쓴맛 역시 익숙하던 그 문화가 주는 규제 안으로 다시 나를 어느 정도 구겨 넣어야 함에 대한 씁쓸한 상상에서 비롯된다. 나는 라면과 김치의 매콤 칼칼함이, 목의 묵은 매연 때를 싸악 벗겨줄 것만 같은 바싹 구운 삼겹살의 기름기가, 커다란 스크린으로 즐기는 유쾌한 사투리가 쏟아져 나오는 한국영화가, 치맥과 함께하는 친구들과의 수다가, 한글이 빼곡하게 써져있는 책들이, 나를 반겨줄 가족이 그립다. 그리움이 채워진 순간, 나는 행복할까? 그 감사함은 얼마나 지속될까? 이런 상상은 썩 흥미롭다.
스리랑카를 돌아다니며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머물던 남쪽은 스리랑카 지방 중에서 가장 발달한 곳에 속했다. 내 기준의 발달했다는 의미는 좀 더 저가에 보편적으로 따뜻한 물과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숙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자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한 모던한 느낌의 카페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티 팩토리, 티 가든 등으로 유명한 산악지역 Ella를 떠난 후 지난 열흘 정도 그 발달함을 경험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3G조차 터지지 않았던 것 같다(콜롬보에 도착한 지금도 핸드폰 3G 사인이 뜨지 않는 걸 보아 어쩌면 단지 내 핸드폰의 문제일 수도 있다). 스리랑카에 머무는 초기 한 달 동안 이 곳이 음식 문화와 외식 문화가 잘 발달하지 못했다고 느꼈는데, 그것 역시 돌아다니며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남부 지역에서는 저가는 아니더라고 중가 정도에 생선 요리 등을 접할 수도 있었기에 조금 더 선택에 폭이 넓었다면, 그런 특별한 음식들은 고급식당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스리랑카 중/북부에 머무는 시간 동안은 거의 매일 에그 살모사 등 로띠를 기반으로 한 굽거나 튀긴 간식 요리나 라이스 앤 커리로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물론 가끔은 맛있고, 저렴하며, 청결한 라이스 앤 커리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열심히 돌려대는 슬롯머신에서 아주 낮은 확률로 잭팟이 터지듯 가끔씩,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면 일어나는 일이다. 고로 누가 가장 인상 깊었던 스리랑카 음식을 묻는다면 나는 망고, 파파야, 킹 코코넛, 사워솝, 패션 프룻, 수박, 파인애플, 바나나, 람부탄 등.. 성공 확률이 현저히 높은 현지 과일들을 언급하고 싶다. 이런 먹고 살기 어려운 점은 돌아가는 집(특별히 음식)에 대한 향수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았으므로 귀국을 앞둔 나에게는 긍정적 결과로 볼 수도 있겠다.
스리랑카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물론 앞에 언급한 내 기준에서는 이 변화를 발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단어를 쓰는 것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발전이라는 단어가 가진 긍정성만큼 그 변화가 현지인들에게 긍정적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머물기도, 방랑하며 부딪치기도 한 지난 한 달 반의 스리랑카 여정 동안, 나는 자본의 맛을 보기 시작한 현지인들이 돈과 여행자와 물질적 편리함, 화려함에 대해 호기심과 탐욕의 눈을 뜨기 시작했구나라는 느낌을 수차례 받았다. 그건 나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스리랑카의 미래를 상상해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으므로 내겐 의미 있는 문화적 차이었다.
스리랑카의 500년 식민의 역사, 일찍부터 이주해 온 외국인(타밀)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처우, 식민의 역사에서 비롯된 가장 큰 산업이라 볼 수도 있는 차 산업, 유럽계 여행자 중심의 관광 산업, 불교국가, 하지만 지역별로 힌두, 이슬람, 가톨릭이 모여 살며 지역 중심적 종교를 발달시킨 다종교 국가. 그 것들을 보고, 듣고, 겪고, 읽으면서 나의 과거 경험들과 뒤엉켜 얕지만 스리랑카의 사회/문화적 변화의 맥락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스리랑카에,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내가 속한 국가를 다시 보게 해 주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긴 1년간의 여행을 통해 얻게 된 성찰하기라는 또 하나의 선물인 듯하다. 나는 이제 집으로 간다. 소설 두 여행자의 집은 아마도 집에서 길을 그리워하고 상상하며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2017.01.29., 스리랑카의 마지막 날 비 내리는 콜롬보,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