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 위에 서서

이야기, 아홉

by 방자

탈페에 머문지 1달이 지났다. 우리가 있어 맘놓고 외출을 했다던 집주인 카순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배낭을 멨다. 머물러 지낸 한달 사이 스노쿨링 마스크와 오리발, 요가매트 등 삶의 질을 높여주는 부가물품들을 구매한 터라 일부의 책과 옷을 기부했음에도 이 곳에 들어왔을 때보다 무거운 배낭을 들게 되었다. 이제 남은 기간은 보름 남짓. 그 기간은 길 위에서 스리랑카의 매력을 찾아 방랑하는데 보내기로 했다. 사실 한달살이를 하면서 완성하려고 했던 소설 두 여행자의 집을 절반도 채 쓰지 못한 터라 마음의 편치만은 않지만, 뭐 여기서 계속 붙들고 있는다고 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녕, 너른 바다 속 물고기들이여! 푸르른 코코넛 나무들이여!

분명, 삶의 어느 순간. 너희들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


머물던 집 근처에서 32번 버스를 타고 종점 근처인 Tissamaharama까지 이동했다. 늘상 타던 로컬버스지만 새삼 커다란 짐을 들고 장시간 이동하자니 덜컹거리는 도로의 과격한 운전이며, 문을 연채 운전하는 완행버스의 위험함,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타고 내리고 사방에 먼지가 날리고, 차장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돈을 걷으러 다니고, 스피커에서는 도대체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가수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듣기 힘든 시끄러운 노래가 쉼없이 흘러나오는 그 모든 것에 괴롭기만 하다. 3시간 반을 이동한 후에 목적이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아니 정확하게는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다가와 특별히 우리에게만 특별히 좋은 가격에 Yala 국립공원 사파리 지프를 태워주겠다며 다가왔다. 물론 이 곳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Yala 국립공원에 갈 목적으로 이곳을 지나고, 우리도 그러한 목적으로 온 것임으로 먼저 반겨주는 것도, 정보를 주는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짙은 상술이 느껴지는 준비된 말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쉬이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에 약간은 방어적이 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작은 마을을 돌며 여럿의 사람들을 만나 제일 괜찮아 보이는(왠지 신뢰가 가게 생긴) 사람에게 다음날 아침 지프 사파리 투어를 예약했다. 마을에서 Yala 국립공원까지는 지프로 30분 정도가 걸린다. 지프에는 우리 둘과 영국에서 온 커플, 드라이버 이렇게 다섯이 함께 했다. 여전히 어두운 아침 6시, 공원 문을 열자마자 입장해서 11시까지 반나절을 공원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찾았다. 나는 동물원 외의 공간에서 지프 사파리를 해 본게 처음이라 뭔가 드라이버의 진두지휘하에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우리가 길에서 표범을 만났을 때 엄청 좋아하며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르고, 행운과 드라이버의 역량을 치하하는 동행(영국인 커플)을 보니 내가 뭘 모르는 건가 싶기도 했다. 공원은 매우 넓고 나무와 돌, 늪지대와 햇빛이 어우러져 자연의 아름다움이 돋보였으며 거기에는 표범, 코끼리, 공작, 뭉구스, 꽃사슴, 악어, 야생닭, 원숭이, 버팔로, 멧돼지, 왕도마뱀 등이 살고 있었다. 물론, 관리받는 국립 공원이라 특별히 많은 야생동물이 사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많고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리랑카가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지켜가며 살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움이 일었다. 그곳의 딱 하나 평화를 깨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타고 있는 몇십, 혹은 몇백일지도 모르는 지프차가 내는 소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머문 Tissa 마을은 저녁이면 사람들이 나와 목욕과 수영을 즐기는 작은 개울을 끼고 있다. 커다란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튀김을 파는 사람들, 큰 절 과 스님들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스리랑카 마을이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주로 당일치기 혹은 1박으로 사람들이 머물다 가기 때문에 값비싼 관광물가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밥 값이 무섭다. 우리는 이틀밤을 이곳에서 보낸 후 버스를 타고 Ella로 이동했다. 산 중턱에 있는 Ella 마을 주변에는 차 밭이 많다. 우리도 이 곳의 주요 액티비티로 꼽히는 차밭을 지나 언덕을 오르는 트래킹과 차공장 방문을 했다. 차 공장에서는 스리랑카에서 차산업이 발달하게 된 역사(식민의 역사이자 타밀족의 이민의 역사이기도 함)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것과 차 잎의 부위와 분쇄정도에 따라 다르게 구분되는 여럿의 차 맛을 볼 수 있다는 것, 차 제조 공정 전반을 둘러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공장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스리랑카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묘하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론티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그 실론티를 만들기 위해 차 잎을 따고 밭을 돌보는 대부분의 고된 노동을 하는 타밀 사람들을 매우 싫어하거나 무시한다는 점이었다. 이 것은 내가 평소 동남아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경험한 현지인들이 식민역사의 잔재이기도 한 식민시절의 건축물(대부분 유네스코로 지정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부심만큼 아이러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lla근처에는 Little Adams' peak라고 하는 작은 언덕이 있다. 차 밭들을 지나 언덕에 오르면 저 멀리까지 굽이 굽이 늘어져 있는 산 능선들과 산 곳곳의 차 밭들이 보인다. 날씨가 제법 무더웠는데도 높은 나무가 없는 언덕 꼭대기에 위에서 서 있자니 바람이 선선하다 못해 차갑게까지 느껴졌다. 한참을 거기 앉아 있자니, 그저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오랜만에 길 위에서 하루하루 부지런히 걷고, 머물 곳을 찾아 헤매고 있자니 글을 쓸 곳도, 글을 쓸 여유도 없지만 그저 걸으며 생각이 많아지고 밤이 되면 곤히 잠들게 되는 이 방랑의 삶이 가장 건강하고 자연스런 삶이란 생각마저 든다. 기왕이면 채집을 통해 먹거리도 구해먹고, 그저 멋진 나무 밑에서도 쉬이 잠을 청할 수 있으면 더욱 좋으련만.


<2017.1.19. Kandy가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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