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 열하나

by 방자

한국에 돌아온 지 열흘이 지났다. 한국의 시간은 특별히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부지런히 그립던 것들을 찾아 헤맸다. 한식으로 실컷 배를 채웠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두 편이나 봤고,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보따리도 풀고 있다. 그리고 집을 보러 멀리 순천에도 다녀왔다. 쇼핑몰에서, 길에서, 버스정류장에서, 기차에서, 영화관에서, 아파트 입구에서, 도서관에서, 식당에서.. 우리는 시간만 나면 살기 좋은 대한민국 칭찬에 여념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은, 한국인이 살기 제일 좋은 나라이다. 나는 진즉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스무 살부터 들어온 그렇게 싸돌아다니다가 언젠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외국에 눌러사는 게 아니냐는 주변인들의 말에 피식 웃으며 '글쎄요, 그러진 않을 것 같은데' 라는 대꾸를 안팎으로 했더랬다. 하지만 내가 핀란드인이나 스리랑카인, 혹은 탄자니아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나는 절대 한국에 살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시선을 바꿔서 바라보면 이 나라는 딱히 살만한 곳이 못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이 생각의 근거를 어떻게 글로 잘 풀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나는 대한민국이 나라는 인간에게는 살만한 곳이지만, 누구에게나 살만한 곳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나 사회적, 개인적 시선의 제약으로 인하여.


고민을 하다 컴퓨터 켜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처음, 인도/스리랑카 여행기, 소설 쓰기를 주제로 12월, 1월에 걸쳐 사나흘에 한 번씩 쓰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사나흘에 한 번씩 글을 쓰지도 못했고, 소설도 다 쓰지 못한 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2월이 되었으므로 이대로 글을 마치고 새로운 글을 시작하거나 마치지 못한 소설 쓰기에 집중해도 그만이겠지만, 왠지 이 글을 이어가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 주제를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 집을 찾는 중이고, 내 소설 두 여행자의 집의 주인공들에게도 집을 찾아주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끄적끄적 나의 집을 찾고 소설 쓰기를 마칠 때까지 이 글쓰기를 이어가 보기로 했다. 최대한 가볍게..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방랑하는 삶이야말로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고 작은 의미의 내가 속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 나는 스스로를 경험론자이자 환경론자(친환경론자가 아닌, 주변 환경에 의해 삶이 인식되고 결정된다고 믿는 주변 환경론자)라고 생각한다.


돌아온 우리를 반겨 준 부모님은 오랜 여행으로 얼마 안 되던 자산마저 탕진한 젊은 커플이 소박하게 식을 올리고 부모님 곁(집)에서 새 출발 하길 바라는 눈치를 보이셨다. 꽤 많은 시간을 돈이 없이도 굳이 밖(새 집)에서 시작하고자 하는 우리의 결의와 계획(아직은 미흡하게 뼈대만 있는 계획이었지만)을 부모님께 이해시키는데 할애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 직방과 다방, 네이버 부동산, 마이홈 포털 등을 둘러보며 전국을 대상으로 우리가 살만한 집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은행에 가서 주택마련 관련 대출 상담도 받아보았다. 처음으로 주택 공급률이 100%가 넘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왜 그렇게 집 없는 사람이 많은지, 대출을 끼고 집을 마련한 후 그 대출을 갚기 위해 노동자의 삶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자금, 시간, 환경의 여유를 찾아 지방으로 가볼까 고민도 해 보았는데, 요즘 사람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지 내가 염두에 둔 지방은 생각보다 집값이 비쌌고, 무엇보다 전세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월세는 노동의 주요 원인이 아니던가? 짧은 시장조사 과정을 통해 월 50만 원 이하(대출금 이자이던, 월세이던)의 비용에서 살 곳을 찾기로 결정했다. 단지 50만 원 이하이면 아무 집이나 상관없는 것은 아니므로 아마 쉽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당장 살 곳이 없는 형편은 아니므로 찾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리라. 요즘 만나는 혹은 연락을 해 오는 지인들이 내게 바쁘지 않냐고 많이 묻는다. 나는 바쁘지 않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백수가 바쁠게 뭐 있으랴. 하루 중 장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근데 그런 질문을 자꾸 듣고 있자면, 바빠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사는 게 그렇지 뭐라고 답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라 칭했던 이 나라는 바쁨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 사실 그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 스스로 여유로운 삶 계획해 살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내가 여행에서 한 주요 작업 중 하나가 그 바쁜 삶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으므로 쉬이 다시 그 늪으로 들어갈 마음은 없다. 바빠지면 나를 돌아보기 어렵게 되고, 그럼 내가 원하는 삶을 고민하며 잘 살아가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소설 쓰기 또한 그런 핑계로 미루고 있다. 사실 내용이 아닌 전개 방식을 처음부터 좀 더 읽기 쉽고 밝게 뒤집고 싶은 마음이 있어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은 정했는데, 미련 때문인지 절반 가까이 진행된 작업을 놓아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몸가짐으로 진득하니 자리에 앉아 글쓰기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내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모양이다. 딱히 부지런해야 할 이유는 없다.


<2017.2.10., 수원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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