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했어요

이야기, 열둘

by 방자

혼인신고를 했다. 굳이 번거롭게 혼인신고 같은 걸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니 신혼부부에게 이율 할인을 해준다는 유혹이 손을 뻗쳤고 원래 자존심이나 강한 철학에 의해 신고를 하고 살 순 없다고 외치던 것은 아니었기에, 그깟 돈 몇 푼에 번거로움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며 구청을 찾았다. 엄마가 여행을 떠나기 전 신고라도 하고 가라는 걸 그렇게 온갖 핑계를 대며 미뤘던 걸 생각하면, 시스템과 돈의 힘이 크긴 한가보다. 신고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인터넷에서 서식을 다운로드하여 내용을 쓰고, 그의 도장과 내 도장, 엄마 도장, 아빠 도장(증인용)을 찍어서 가져다 냈다. 뭔가 허술한 느낌이 드는 이 절차를 치르면서 굳이 그런 사람이 있겠냐마는 맘만 먹으면 (도장하나 파서)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찜찜함이 일었다. 구청에서는 결혼을 축하한다며 엉키지 않는 태극기를 선물해 주었다. 왠지 애국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사실혼보다 법적 부부가 더 책임지는 사이라며 흡족해하셨다. 왠지 효도한 기분도 들었다. 나는 이렇게 남 좋은 일한 것 같은 뿌듯함과 찜찜함을 느끼며 법적 유부녀가 되었다.


우리는 파주에 반전세 집을 계약하고, 대출신청을 하고, 이사날짜를 잡았다. 3주 후 이사를 한다. 어차피 빈 집임으로 후다닥 처리해 더 빨리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아쉬움. 추운 날씨. 대출 담당자의 일처리 편의 등의 고려해 날을 잡았다. 막상 집이 생기고 나니 이제 이 집을 뭘로 채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냉장고, 세탁기, 밥솥, 청소기 등의 기본 가전만 구매를 하고 나머지 가구와 소품들은 천천히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언제든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짐을 맡겨야 하는 일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공간을 마구 채워 넣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짐이 많아지면 유동성이 떨어짐으로) 그래도 한 번쯤 신혼의 느낌을 내는 인테리어를 하고 살아볼까 싶은 마음도 있다. 마음은 바람에 갈대처럼 흔들리고 답은 아직 없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우연히 보게 된 TV에서는 2016년 결혼과 출산 비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사실 매년 최저치를 갱신하며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음), 2017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라고 했다. 저수입 생활자일수록 결혼 비율이 낮다고도 했다. 소위 3포 세대라 불리며 결혼/연애/출산에 대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 저소득자이자 비노동, 저소득, 저소비 삶을 지향하는, 결혼에 대한 욕구는 가져본 적도 없는 나는 어쩌다 결혼하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니 결혼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나름의 깊은 고민(대화/토론의 장들을 통해서)을 해봤기 때문에, 그저 하라는 대로가 아닌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인터넷에서 가전/가구를 볼 때는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저렴하고 작은 가구들을 골랐는데, 그래도 한 번쯤 실물을 봐야겠다 싶어 들른 몇몇 전자 전문매장과 가구 전문매장에서는 신혼이라면 10년 이상 쓸 것을 고려하여 좋은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며 값비싼 냉장고, 세탁기, 침대 등을 마구 마구 추천해줬다. 순간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상냉장/하냉동의 중소형 냉장고를 생각하고 있던 나의 마음은 양문형, 김치냉장고 기능이 있는 대형 냉장고에 흔들렸고 그냥 적당한 침대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 몸은 폭신하고 데굴데굴 굴러도 스프링 느낌이 전혀 없는 고가의 브랜드 침대에 현혹되었다. 사람들은 신혼부부와 신혼집이라는 우리가 들고 간 딱지가 마치 원하든 원치 않던 VIP 혹은 프리미엄이라도 된다는 듯이 당연 고가의 고성능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고 설득해대는 터라 나는 그 딱지를 떼고 자취생 위장 딱지를 달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것들이 무서워 사람들이 결혼을 못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여행 중에는 당연하게 손빨래, 냄비밥, 비질 청소, 신선도 유지를 위한 이틀에 한번 장보기 등을 실행하며 살았는데, 혼인신고를 했고 집이 생겼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정말 그렇게까지 기능성 좋은 좋은 세탁기, 밥솥, 청소기, 냉장고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지난한 방황과 흔들림의 끝에 우리는 검소한 삶을 지향하기로 했다. 어차피 2년 계약이라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데다 언제 다시 장기간 여행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맡겨야 할 짐이 너무 많은 것은 곤란할 것 같기도 했다. 하루 이틀 보관할 거리가 들어가기만 한다면 냉장고가 있는 게 중요하지 그게 300리터이든 800리터이든 뭐가 그리 중하겠는가. 그래도 밥 맛은 중요하니 밥솥과 침대는 좀 좋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가구는 천천히 만들어서 채우기로 했다. 어쩌면 내내 텅텅 빈집에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결혼을 했다. 곧 집도 생긴다. 이제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를 고민해봐야겠다. 뭔가 흥미진진한 설계와 상상의 거리가 생긴 기분이다. 나는 집으로 한발 더 다가갔다.


<2017.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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