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열셋
이사를 했고 일을 시작했다. 일이라고 해 봤자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집 밖으로 나가 회의나 워크숍 진행을 하면 되고 대부분의 시간은 컴퓨터와 나 자신, 그리고 책, 소수의 사람들만 접촉하면 되는 수준이지만 나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고 일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상상에서 실제로 구축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고민하며 보낸 것 같다.
이사를 위해 며칠 동안 짐을 싸고 정리하면서 내 방 다락에 잠들어 있던 옛 추억들이 다시금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학창 시절과 창업 초기에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받은 편지들을 다시금 읽고 있자니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싶게 낯설고, 부러운 기분마저 드는, 무서울 거 없이 바지런히 부딪치며 많은 애정 속에 살던 나의 과거가 생각나 잠시 뭉클함과 내게 편지를 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이 일었다. 내가 이 모든 편지들에 답장을 했던가? 나의 글도 어디선가 가끔 그들에게 새로운 기운과 자신감을 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으려나? 아련하게 기억이 날듯 말듯한 내 손끝에서 나온 글들이 내게는 없는 것에 대한 서운함, 궁금함, 그리고 잊고 있던 나에게 대한 그리움, 삶에 자세에 대해 더 경건해진 마음가짐을 남기고 다시 편지들을 박스에 넣어 다락 깊숙이 언젠간 꺼내볼 수 있게 추억으로 남겨두었다. 이런 맥락에서 스스로 이삿짐을 싸는 일이 매우 의미 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살던 이 집에 남기고 갈 과거의 나와 타인과 함께 살 새 집에 가져갈 지향하는 미래, 그리고 현재의 나로 짐을 나눠 박스에 담고 자리를 잡아주는 일을 하며 마치 이것이 집으로 가는 길의 중요한 계단이자 과정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이사를 한지 한 달이 가까워졌는데, 나는 아직 동네가 낯설다. 그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 집이라는 공간과 공간 안에서 대다수의 시간을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룸 메이트와의 삶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을 뿐이다. 나와 그는 작년 일 년 동안 함께 여행을 하며 거의 24시간 붙어있으며 각종 문제 상황들을 해결하는 삶을 살았었기에 스스로 우리에게는 신혼 3년 차 정도의 친숙함과 이해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이 아닌 삶으로 들어와 함께 일상을 살아보니 그건 또 다른 이야기임이 느껴졌다. 이것은 조금 더 일상의 취향과 습관에 관련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취향이 다르다. 그리고 선호나 중요도도 다르다. 그는 청결에 예민하고, 나는 정리에 예민하다. 그는 심플함을 좋아하고, 나는 심플함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아늑함이 느껴지지 않은 심플함은 삭막한 것만 같아 싫다. 그는 기능과 내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는 늘 가성비를 따진다. 그렇다 보니 뭐가 옳고 그른 것은 아닌데 새 집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구매, 인테리어, 유지 등에서 늘 조금씩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슈들은 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아서 내 맘대로 정해도 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게 너무 중요한 거라 그의 의견과 동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자꾸만 의견을 물을 때도 있다.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서로 귀찮음, 서운함, 아쉬움, 공감, 배움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애정이 더해져 다름을 통해 상호 배우고 성숙하는 계기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서로 보완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함께 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창업 초기 문화 다양성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름의 가치, 다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너지에 대해 늘 이야기하던 나는 그 후 살면서 다름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어려움, 무재미의 맛을 톡톡히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름에는 이해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정도와 경도가 있는 게 아닐까, 그 범위를 넘어서면 다름의 가치도 낮아지고, 시너지도 내기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다양한 장소, 문화로 그와 함께 여행하면서 여행 중 종종 낯선 곳에 서 다른 세상을 접하는 것보다 익숙한 그의 낯선 모습을 접할 때 나는 더 큰 다름을 느끼곤 했지만 애정이라는 것의 힘이 참으로 커서 그 다름과 낯섦이 결국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쳐 배움이나 깨달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만간 이 애정의 범위를 그에서 집으로, 주변으로, 마을로 넓히기 위한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 하나 만들기 어려운 신도시 셋집에 살지만 그래도 어쩌면 마을살이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조금 더 넓은 범위의 함께 사는 삶을 이곳에서 경험해 보길 바란다.
<2017.4.4., 파주 새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