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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그릇 Jul 30. 2022

9시간동안 ‘소떡소떡’ 판 이야기

인생은 휘뚜루 마뚜루 (4)


우선 지르고 본다.


 나는 무조건 경험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우선 해보고 본다. 사업을 해보고 싶단 생각에 우선 작게 시작하자는 취지로 텀블벅 후원과 플리마켓에 나갔던 적이 있다. 텀블벅 후원이 성공하니 플리마켓도 쉬워 보였는데, 막상 플리마켓에 나가보니 반응은 냉담했다.


 참고로 텀블벅은 인맥과 SNS만 잘 활성화되어있다면 펀딩 달성이 그리 어렵지 않다. 누군가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한다고 하면 지인들이든 선의든 한두 개쯤은 구입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표를 달성한 펀딩에 눈이 멀어 나는 내 아이템이 잘 팔릴 것이라 생각했다.


 플리마켓의 자릿세는 하루에 2~5만 원 선인데, 자릿세만 내는 게 아니라 테이블이나 가판대, 액자 등 물건을 팔기 위한 데코레이션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이미 펀딩에 성공했으니 자신감이 충만해져서 '어이구 상품이 모자라서 못 팔면 어떡하지'하며 100개가량의 대량생산을 해서 플리마켓에 나갔다.


그리고 결과는? 폭망이었다.


 한 달가량 플리마켓에 꾸준히 나갔는데 겨우 자리값만 벌고 돌아왔다. 다들 좋아하고 이쁘다고 말하면서 정작 구매는 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졌지만, 사람들은 겨우 이쁘다는 이유로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상품이거나 어디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물건이 아니라면. 그렇게 나는 많은 재고를 떠안아야 했고, 그 재고들은 선물용으로 사용되었다. 딱 재료비만 얻은 채 그렇게 사업의 꿈을 접는다... 는 개뿔, 순간 필요하거나 희귀하지 않아도 플리마켓에서 잘 판매가 되는 것이 하나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그날도 플리마켓에 나가 열심히 홍보했지만, 사람들이 오지 않는 가판대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유독 손님이 많은 부스들이 있었다. 바로 음식을 파는 곳들이었는데 판매자가 솜사탕을 팔던, 강아지 수제간식을 팔던, 수제청을 팔던, 마카롱을 팔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파는 곳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다.


 우선 지르고 보는 내 성격 어디 가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음식장사를 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거다 싶었다. 바로 보건증을 발급받고 야시장에 참가신청서를 냈다. 당시에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 배우의 먹방이 유행했는데, 한참 흥했던 메뉴는 바로 '소떡소떡'이었다.


 이 메뉴를 골랐던 것에 큰 이유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쉽고 간단했다. 치킨집에서 닭도 튀겨봤는데 소떡소떡 하나 못 튀기겠어? 싶었다. 냉동으로 완제품이 나오니 살짝 튀겨서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사야 할 도구들은 휴대용 버너와 네모난 팬 정도였으니 투자비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또 원대한 꿈을 가졌다. 소떡소떡을 팔아 부자가 되면 건물을 사야지 생각하며 주문을 넣었는데, 100개 하면 모자를 수 있으니 150개 해야지! 하며 150개를 날름 주문했다. 케첩과 머스터드도 대용량으로, 소떡소떡 포장지와 손님들이 사용할 냅킨도 주문했다. 하여간 투자는 아끼면 안 된다. 모조리 주문하자.


그리고 대망의 야시장 날이었다.


 말로만 야시장이지 아침 일찍부터 시작했다. 아마도 11시쯤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10시에 나가서 느긋하게 준비를 하려고 물건을 모두 옮기고 테이블 세팅을 했다. 이전처럼 폭망 하지 않을 거야 생각하면서 버너도 꺼내고 소떡소떡도 꺼냈는데...


 이름과 가격을 적으려고 준비한 A4용지에 글씨를 쓰려는 순간 갑자기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몰려왔다. 테이블 위에 꺼내놓은 소떡소떡을 보고는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냉큼 "2개 주세요." 주문부터 했다. 그렇게 주문하는 가족들도 보고 너도나도 몰려와 줄을 서길 시작했다. 와. 이전에 플리마켓 나갔을 때는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같이 야시장에 나갔던 친구가 "야, 너는 돈만 받아! 내가 다 할게!"라고 의기양양하게 소리쳤었으면서 막상 손님들이 몰려오니 당황했는지 소떡소떡을 태우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 여름이라 우리가 파는 음식을 먹고 탈이 날까 싶어 꽁꽁 얼려서 나간 게 화근이었다. 얼려있던 소떡소떡이 녹으면서 물이 생겼고, 물과 기름이 만나면서 기름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튀며 냄비가 다 타버린 것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없음으로 생긴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꽁꽁 얼려 둔 소떡소떡이 생각보다 천천히 해동이 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손님들은 계속 줄을 서는데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이 없었다. 급히 편의점으로 달려가 은박지를 사서 하나하나 감쌌다. 냉동된 것을 은박지에 싸놓으면 상온에 둔 것보다 빨리 해동이 된다고 한다.


 나는 그 친구를 밀치며 "야, 너는 케첩이나 뿌려!" 하고 비장하게 소떡소떡을 튀기기 시작했다. 아직 해동이 덜 된 소떡소떡을 튀기려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주 약한 불에 천천히, 자주 뒤집으면서 튀겨야 했다. 안그러면 떡이 다 갈라져 꼬치에서 떨어져 나간다. 소떡소떡을 파는 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프라이 팬에 손을 계속 담으며 소떡소떡을 튀기니 기름이 너무 뜨거워서 비닐장갑이 다 녹아내렸다. 그런데도 손님들이 계속 몰려오는 통에 뜨거운 줄도 모르고 계속 소떡소떡을 튀겼다. 비닐장갑은 갈아 끼어도 자꾸만 녹아내렸다.


 친구는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이거 하나 못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친구에게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했다.


 기름에 튀겨져 빨개진 내 손가락을 보고 친구가 편의점에서 급히 사 온 목장갑을 끼고 위에 비닐장갑을 꼈다. 감히 굽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줄을 섰기 때문이다. 태우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였다. 혹시라도 망작이 나오면 새로 꺼내 다시 튀겼다. 단 한 명의 실망이라도 용납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 계속 사람들의 반응을 물어봤다. 컴플레인이 들어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친구는 케첩과 머스터드를 뿌려주고 돈을 받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보였다. 그 친구도 나만큼이나 정신없어 보였다. 소떡소떡을 튀기는 것만 힘든 게 아니다. 사람을 응대하는 일조차도 힘든 것이었다. 세상에 참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계속 소떡소떡을 팔았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잘못 튀긴 소떡소떡으로 식사를 하고, 물로 목이나 축내며 계속 장사나 했다.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끝까지 해냈다는 게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팔면서 누군가가 호응을 한다는 것은 참 유쾌한 경험이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손님들은 끊이질 않았고, 나는 야시장의 종료시간보다 훨씬 더 전에 준비한 소떡소떡 150개를 모두 팔았다.



 그때 번 돈이다. 계좌로 받은 돈도 있다. 자릿세와 재료값을 모두 제하고도 이십만 원이 남았다. 돈도 돈이지만, 무언가에 꽂혀서 바로 실행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얻은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내가 만약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든다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 결과가 나온다. (물론 폭망 한 것도 결과는 결과지만, 그를 토대로 다시 성공의 결과를 얻었다.)


물론 쉬운 일은 없지만 그래도 하지 못할 일도 없다. 겪으면서 배워가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문제의 해결법을 찾아가고 개선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 우선 행동해보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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