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건가 싶다.
10대 때 봤던 만화책에서 타로카드가 나와서
곧장 아빠 손을 잡고 서점으로 달려가 책 하나를 구매했다. (물론 계산은 아빠가)
그게 초등학교 때의 일이었고,
중학생 때는 책에서 읽은 대로 쉬는 시간에 펼쳐놓고 친구들을 봐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 다른 반 애들도 오기 시작하고,
사행성놀이를 한다고 선생님께 일주일 카드를 뺏기기도 했다.
고등학교땐 동아리에서 저녁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언니들, 오빠들한테 봐주고
돈까스나 삼각김밥 정도를 얻어먹으며 다녔다.
그때까지도 난 내가 타로카드를 오래 잡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
20대, 잠깐 가출했을 때 지방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은 방 쓰는 언니들에게 봐주고
밥 얻어먹고, 술까지 얻어먹었다. 그때 살짝 아리까리 했다.
20대 일 땐 쉽게 부모님께 용돈 달라고 말하기 어려운 자존심 강한 장녀여서,
학교 끝나고 주말알바까지 하지만 돈이 부족해 타로를 조금씩 인터넷으로 봐줬다.
3000원, 5000원 모일 때마다. 조금은 뿌듯했다. 일단 내가 밥 사 먹을 돈은 되니까.
그러다가 타로를 봐준 사람한테 연락이 왔다.
혹시 채널하나 파서 장사하실 생각이 없냐고...
아아? 그런 게 있나요? 하고 그분의 말을 따라 하나 채널을 파고, 장사가 싫어서
입소문으로 사람들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정기적으로 오시는 분, 1년에 한 번씩 오시는 분, 하루가 멀다 하고 오시는 분.
다양하게 타로를 봐줬다.
그러다가 지금은 여기저기 불려서 타로를 봐주고 돈을 받고 있다.
직업이 있지만 불안하고, 하고 싶은 거 많은 욕심쟁이 30대에 타로가 중심이 되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매일매일을 내가 다음날은 어떻게 살까? 뭐 먹지? 어떤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지? 등을 고민하는데,
타로를 볼 땐 딱히 그럴 일이 없다.
사주를 볼 때 돈복이 있다 하고, 신점을 봐도 굶어 죽을 일 없다고 했다.
그게 맞는 건지 진짜 아득바득 내 삶을 살다가 잔고에 0이 줄어들다 못해 보이지 않을 때쯤에
띠링 - 하고 타로 봐달라는 알람이 뜬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잘 본다, 소름 돋는다, 이게 뭐냐, 맘에 안 든다, 싫다, 좋다, 이런 말 저런 말
듣고 스스로 피드백에 피드백을 더하다 보니 견고해졌고 내 나름의 스타일도 찾아가며
현재의 내 타로샵이 완성이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더 배울게 많지만..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고민이 대중없이 아침 점심 저녁 새벽에 나타난다는 깨달음도 생겼다.
그래서 나는 24시 항시 운영 중이다.
늦게 답하더라도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 달라고 간절히, 빠르게 소통하려고 한다.
나도 이렇게 바스락거리는 인간일 뿐인데, 나를 믿어주는 게 꽤나 행복한 부담이 된다.
일단 오늘도 기다린다.
띠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