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오래된 정원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를 읽고

by 윤소정


연애를 할 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라는 말을 한다.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연애의 갑을관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아, 비웃어라. 절절히 사랑한 이에게는 더 자주 꽃이 피고 꽃이 지노니,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울며 사랑에 뛰어드는 이도 있다. 사랑으로 깊이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약해지는 일이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강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갑과 을을 구분 짓고 사랑에 몸을 사리는 사람들은 약함을 입을 용기가 부족한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 조차도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어 보배로운 생명과 마주하는 순간만은 더 많이 사랑하는 자리를 피해가지 못한다. 그 사랑의 힘이 큰만큼 우리의 경영을 넘어선 삶 앞에서 신비를 경험하는 날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압도되는 날들이 더 많다. <면역에 관하여>를 쓴 율라 비스도 아들이 태어나던 날을 "더 이상 두려움이 없지 않은 새 세상으로 건너"온 날로 회상한다. 율라 비스가 묘사한 어머니 노릇의 풍경은 언젠가 느꼈던 감정,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 어쩐지 예상되는 반응이다. 밤마다 아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낮에는 아기가 젖을 얼마나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잠을 얼마나 잤는지 안 잤는지에 온 정신을 쏟는다. 그 뿐인가? 아이를 만지기 전에는 항균비누로 손을 씻고, 손 소독제로 다시 소독을 하고, 매일같이 아기용품에 살균제를 뿌리고, 입에 넣었던 물건을 모조리 끓여 살균한 후 다시 소독기에 넣는다. 만약 아킬레우스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려고 스틱스 강에 담갔던 그의 어머니가 현실의 인물이라면, 전세계의 많은 부모들이 너도나도 스틱스 강물을 공구(공동구매)하려고 줄을 설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것은 스틱스 강물이 아니라 예방접종이다. <면역에 관하여>는 '과연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맞춰야 하나?'라는 질문을 가지고 엄마의 관점에서 공부하고 고민한 흔적이다. 그런데 잠깐, 이 모든 유난스러움이 '부모 노릇'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어머니 노릇'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이 아쉽다. 율라 비스는 '여성 치료사와 비난받는 엄마들'이라는 장에서 과거에 치유를 주로 담당했던 것이 여성 치료사들이며 마녀사냥으로 박해를 받았다는 것과, 20세기에 들어서 조현병과 동성애, 자폐증 등을 어머니의 특정한 양육방식에 기인한 것으로 여긴 과학사를 조명한다. 엄마들이 늘 달고사는 죄책감의 꼬리표가 사회적 지배를 전제로 한 역사의 산물이니, 율라 비스가 '어머니 노릇'에 특수성을 부여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율라 비스는 해러웨이의 말을 빌려 "사회적 지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일 수도 있"음을 주지시킨 후, 종두법의 발견에서 출발하여 백신의 작동원리, 관리체계, 부작용을 망라한 과학적 측면을 전방위적으로 살핀다.


하지만 이 책이 면역이라는 주제를 다룬 다른 대중과학서와 구별되는 점은 면역에 관한 과학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면역을 대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었다는 데에 있다. 율라 비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다른 엄마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가진 두려움을 확인하고 그 뿌리를 신화, 문화, 은유, 역사에서 찾는다. 이러한 여정에서 율라 비스가 가장 중요하게 깨닫는 것은 '내 편'과 '네 편'의 대립이다. 면역계가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별하고, 그 다음 비자기를 제거하거나 보호막에 가둘줄 안다고 보는 면역계 이론에서 나타난 대립은, 감염될 수 있는 취약한 존재인 '우리'와 우리를 감염시킬 수 있는 악한 '너희'를 구분 짓는 우리의 사회적 시각에서도 재현된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자기보다 더 많은 타자(미생물)를 품고 있다. 또, 우리가 피부라는 경계에 오롯이 담긴 한 몸에만 깃들어 살고있다는 믿음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 더욱이 순수하고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의 작은 몸조차도 질병을 퍼뜨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실상 우리 모두는 면역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몸에 빚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약해진다는 것, 상대가 아플까 다칠까 두려움에 떠는 일은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의 숙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들숨과 날숨으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바로 인식할 때, 우리가 서로의 연약함을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리하여 오래 전부터 우리가 속해있던 공동의 정원을 함께 가꾸어 나갈 때 우리의 약함은 너와 나를 더욱 아름답게 꽃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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