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한 그녀

I love to hate her.

by 윤소정
언니, 이거 언니 이야기 아니에요?

시누이는 읽고 있던 '82년생 김지영'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다, 나는 '83년생 윤소정'이다. 대한민국 1남 2녀 자녀 가정의 둘째 딸인 것이다. 나에게는 나를 몹시 사랑하는 언니와, 나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조금은 어려워하는 남동생이 있다. 나의 부모님은 나와 나의 자매형제 모두를 무심한 듯 정성을 다해 키우셨다. 나를 가리켜 '온실 속 화초'라고 놀리던 실험실 선배의 황당했던 이야기가 오늘날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얼마쯤 귀하게 자란 나를 진정 '83년생 윤소정'으로 완성시키는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 바로 나의 할머니이다.


내가 참으로 미워하기를 즐겨하는 사람 할머니. 그녀는 나의 탄생을 환영하지 않았고, 나를 탄생시킨 내 어머니의 삶에 고단함을 더하는 사람이었다. 관계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 뱃속이 투명하여 그 안에 든 욕심과 욕망이 다 들여다보이는 사람,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놀러를 가면 우리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할아버지와는 달리 할머니는 늘 차가웠다. 사실 내 남동생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늘 그녀의 관심 밖이었고, 나 또한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무심하게 세월이 흘러 내가 학부생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위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되는 듯하였으나 상태가 악화된 할아버지가 대형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어디서 그런 마음이 났는지, 내가 병원에서 자며 할아버지를 간호하겠다고 나섰다. 삼촌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는데, 병원에 계시던 할머니가 지체 없이 삼촌 차에 올라타고는 나와 할아버지만 남겨둔 채 떠나가버리셨다. 차가운 사람.


그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주방의 커튼을 바꿨다. 유학을 떠나는 내 손을 붙잡고 "너 공부시키느라 니 아빠 힘든 거 아니냐?"라고 묻던 그녀는 결혼 전 내 남편의 손을 붙잡고 "소정이 결혼해서도 꼭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해요."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그렇게 늙어갔다. 만날 때마다 눈에 띄게 약해졌다. 나는 그걸 보는 게 힘들었다. 외면하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할머니의 건강이 부쩍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오늘날 그녀의 마음은 온통 그녀의 딸들에게 향해있다는 것과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들었다. 평생 "내 아들, 내 아들, 내 손자, 내 새끼!" 외치시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난 그녀를 모르겠다. 그래서 더 이상 미워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생을 더 살아보면 이해하게 될까? 내 존재에 작은 생채기를 낸 그녀와의 화해를 꿈꾸어본다. 아,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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