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ST MILK EVER | M I L K

내 가슴에 대한 단상

by 윤소정


엄마, 티셔츠 예쁘다. 다음에 크면 나도 그거 사주세요.

어느새 여름, 옷장에서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는데 침대에 앉아 바라보고 있던 태율이가 말했다. 태율이 수유할 때 편하게 입으라고 엄마가 사주신 루즈핏의 크롭탑 셔츠다. 내가 좋아하는 남색과 보라색이 조화로운, 부드러운 면 소재의 셔츠. 옷을 고를 때 색상과 소재 딱 두 가지만 보는 우리 엄마가 고른 옷답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셔츠 앞면에 프린트된 문구였다. 주의를 기울였다면 절대 골랐을 리 없다. 수유할 때 입으라고 사주신 티셔츠 위에는 "THE BEST MILK EVER | M I L K"라고 쓰여있었다. 말도 안 돼, 이 옷을 디자인 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문구를 넣은 거지? 옷을 입을 때마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즐겨 입었다.


어머, 몸에 지방이 하~나도 없네.

유방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던 날이다. 걸쳐 입고 있던 가운을 벗고 초음파 검진을 위해 검사용 테이블 위에 누었는데 한 손에 초음파 프로브를 든 (여) 의사 선생님이 탈의한 나의 상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속으로 웃었다. 내 몸에는 지방이 하나도 없다. 가슴은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로, 내 몸에는 가슴이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슴이 작았다. 막연히 가슴이 좀 컸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 마주한 '왜?'라는 물음에 답하지 못한 이후부터는 자연스레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달라졌다. 임신 중반부터 가슴과 엉덩이가 조금씩 커지더니 몸에 곡선이 크게 생겨났다. 출산을 하고 모유수유를 할 때는 더욱 그랬다. 물론, 다른 풍만한 가슴들과 견줄 바는 아니겠으나, 봉긋해진 가슴은 내 아이들을 넉넉히 먹이고도 남을 만큼의 모유를 만들어냈다. 아, 기특한 내 가슴! 상황이 이러했으니 거울에 비친 "THE BEST MILK EVER | M I L K"라는 우스꽝스러운 문구도 어쩐지 수긍해야만 할 것 같았다.


수유기를 지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한 나의 가슴은 다시 작아졌다. 요가 때문인가, 전보다 더 작아졌다. 그리고 오늘날의 나는 사춘기 이전의 날씬한 소년의 몸을 하고 있다. 거울 앞에 서서 생각한다. 오, 마이 쏘 베리 프랙티컬 브레스트 (Oh, my so very practical breast!)!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 브래지어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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