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음악,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들

by 윤소정
하와이의 마우이섬 Grandma's coffee house에 걸려있던 그림을, 남편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 떠오른 기억, 따라그려본 그림.

적막한 마음이 '고요'가 아닌 '궁핍함'으로 떠오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음악을 듣는다. 뉴에이지 음악도 좋고 팝송도 좋지만 이런 날에는 클래식이나 재즈가 좋겠다.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고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사이 까치발, 가제트 팔을 동원하여 찬장 제일 위에 올려둔 커피 필터를 한 장 꺼낸다. 빳빳하게 접혀있던 연갈색의 필터가 오돌토돌 부드러운 질감을 드러내며 고깔 모양으로 솟는다. 그 명랑함을 드리퍼에 살며시 올려두고 끓는 물을 조금 부어주면 짙은 차분함이 내려앉는다. 이제 커피를 한 스쿱 넣고 물을 조금씩 붓는다. 커피의 향이 코끝을 맴돌다 주방을 가득 채우면, 이제 됐다. 준비가 끝났다.


생각의 되먹임으로 마음이 가난해질 때면 내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방이다. 어떤 날은 와인과 음악, 또 어떤 날은 차와 음악, 또 어떤 날은 이렇게 커피와 음악이다. 커피를 예쁜 잔에 담아 테이블 위에 올리고 노트북 전원을 켠다. 부팅이 되는 사이, 아이들에게도 뭔가 특별한 간식을 줘야지, 휴일이라 집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냉동실에 숨겨두었던 아이스바 두 개를 꺼낸다. 재지(Jazzy)한 테이블 위로 슈릅, 슈릅, 슈르릅, 츄르릅 작은 행복이 통통 튀어 오른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남편을 생각한다. 내가 가까이 두고 부러워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남편이다. 측은한 마음, 애틋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또 때로는 미워하는 마음,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은 오락가락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부러워한다. 가벼운 관심이나 흥미 말고 좀 더 확실한 무언가,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그 무언가를 나는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소명 (the call)'이라고 불리는 운명 같은 그 무언가를 말이다. 이번 생은 헤매다 끝나는 것 아닐까, 여전히 찾아 헤매는 중이다. 그런 나와 달리, 남편은 그의 가슴이 가리키는 분명한 한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나는 그의 그런 오롯함이 부럽고 또 부럽다.

그래서 더 많이 응원해주고 싶은데, 그의 아내로 살다 보니 마냥 응원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응원하는 마음과 그로 인해 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나는 역시나 참으로 범인(凡人)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녀 또는 그가 기혼일 경우) 그들 배우자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상쇄시키려 애써 볼 뿐이다. 오늘 아침, 선택의 기로에 선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마음이 복잡하다. 우리가 이룩한 작은 안락함을 떠올린다. 나는 과연 그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에게 좀 더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자발적 가난'을 이야기하던 스무 살의 나는 자취를 감추고 안락함을 유지할 방법을 궁리하는 나와 마주한다.


재즈의 선율이 흐르고 갓 내린 커피의 향이 퍼지는 순간 다시 마음 가득 부자가 된다. 언제 어디서나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 위에 라이브로 경쾌한 효과음까지 더해지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라면 나는 어느 쪽이든 좋다고, 문자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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