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도시의 외곽으로 막 이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20층 최고층에 위치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아파트였다. 하늘이, 일상의 배경인 집이었다. 앞 베란다와 뒷 베란다, 방의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사방으로 들고났는데, 때문에 나와 아이는 그 집을 '바람이 머무는 집'이라고 불렀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손으로 귀를 감싸며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금세 환한 얼굴이 되어 "엄마, 바람 아저씨가 왔나 봐."라고 소곤거리곤 했다. 베란다 너머로 연둣빛 논과 적빛의 밭이 내려다 보이는 그 집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전세가 귀해서 잠깐 쓱 보고 바로 계약한 집이었기 때문에 이사하는 날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었다. 둘러보고 더욱 특별해졌는데, 첫째는 전셋집 특유의 도배지 구성 때문이었고, 둘째는 주방 쪽 작은 창가 너머로 자라고 있던 풀꽃 때문이었다. "요즘은 전세가 귀해서 주인이 도배 안 해줘요."라던 복덕방 아주머니의 말을 방증하듯, 다이닝룸 벽면에는 아이비 덩굴무늬의 벽지가, 작은 방에는 핑크빛 벚꽃잎이 흩날리는 무늬의 벽지가, 거실 한쪽에는 옅은 오렌지빛 꽃무늬의 벽지가 붙어있었다. '아, 촌스러워라!' 이 세 벽면에 대한 기억이 유난한 걸 보면 사는 동안 자주 들여다보고 감탄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세입자를 거치며 필요에 따라 일부만 덧대어 바른 벽지는 제각각이었으나 결코 거슬리지는 않았다. 또, 햇살이 들고 바람이 드는 주방을 바랐던 나에게, 주방창 너머 콘크리트 사이를 비집고 피어오른 키 큰 풀꽃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었다. 창틀이라는 프레임에 풀꽃 한송이와 시시각각 빛을 달리하는 하늘이 담겼다.
얼마 전, '피카 타임' 이벤트에 당첨되어 sns 인플루언서 (influencer)인 hej.s님의 집을 방문했다. 인테리어 잡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세련되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예쁜 집에서 나와 나의 가족이 살았던 그 낡은 아파트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가지치기'라는 단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방문했던 분 댁에는 거실 전면으로 창이 크게 나있었는데 창문 밖으로 가늘고 키가 큰 나무들이 보였다. hej.s님은 "숲이 거실 안에 들어온 듯" 했었다고, 그런데 얼마 전 가지치기를 해서 나뭇가지가 다 잘려나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바람이 머무는 집'을 떠올렸다. 이사 후, 나는 청소업체에 이사청소를 맡겼다. 이사를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오전, 오후 시간대만 달리하여 빠듯하게 일어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월세 이사 일정으로 인하여, 이사 다음날 거주청소로 위탁을 했다. 청소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커피와 간식을 챙기다가 나의 서성임이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외출을 했다. 돌아와 보니 몇 시간 사이 욕실이며 문틈 사이사이까지 깨끗하게 닦여있었다. 집안을 돌아보며 '업체에 맡기길 잘했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맙소사. 주방 창가에 피었던 풀꽃이 사라졌다. 청소하시던 분께서 그 풀꽃까지 말끔히 제거하신 것이었다.
이번 오월 초에도 그랬다. 내가 속한 작은 모임에서, 한국의 근현대사에 중심이 되었던 오산학교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교정을 걸으며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함께 호흡하며 새의 소리를 들을 예정이었다. "작은 음악회를 위한 공간으로는 이곳이 좋겠어요." 함께 준비하는 분들과 교정을 몇 번이나 둘러보고 정한 공간이었다. 긴 가지를 늘어뜨린 두 그루의 나무가 마주 보고 있는, 그 사이 작은 흙길 위로 징검돌이 졸졸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가지마다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잎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징검돌 주변으로는 작은 풀꽃들이 바람을 타고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그런데 행사를 앞두고 그 공간을 다시 찾았을 때 나무들은 달라져있었다. 그 어린 나뭇잎들이 조롱조롱 달려있던 가지들이 몽땅 잘려나가 있었다. 커다란 줄기와 뭉툭하게 잘린 굵은 가지만 남아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함께했던 분들과 나무의 기둥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마음이 아팠다. 국내에서 가지치기로 아주 유명한 분이 작업을 하신 거라고 했다. 씁쓸했다.
'가지치기, 가지치기, 그런 기억들이 있었지.'하며 특별했던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수업시간이었다. 아직은 '기다리는 힘이 꽃을 피우지 못한’ 여섯 살 아이와 그런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 아이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겼다. 우리는 잠시 아사나를 멈추고, 작은 회의를 열었다.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이미 제도권 학교 안에 적응한 초등학교 친구들은 그들의 다듬어진 행동양식을 벗어난 여섯 살 친구에게 거친 마음을 드러냈다. 마음이 상한 여섯 살 친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잠히 앉아 아이들의 이야기에 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에서도 매일 가지치기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통제하기 쉽지 않다고 잘라내고 쳐내면서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상의 길들임을 생각했다. 아이들과 서로의 관점을 공유하고, 약간의 양보과 이해를 끌어내어 그 날의 수업은 그럭저럭 잘 마무리했다. 하지만 솔직히는 혼란스러워져 버렸다. 가지치기, 가지치기. 나무가 병들지 않도록 나뭇가지의 일부를 선별하여 병든 부분을 제거하거나, 열매가 잘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지치기라는데, 역시 어떤 기술이든 그 경계를 잘 정하고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