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by 윤소정
꺄르르르르

스튜디오 안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진다. 웃음소리가 맑다. 여름의 시작, 나는 아이들과 매트 위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이름하여, 먹는 명상(mindful eating)이다. 곧게 세워진 허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앞으로 옆으로 흔들리고 고개도 덩달아 뒤로 젖혀진다. 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아이들이기에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을 '고요'와 '수다'가 고루 숨 쉴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드려고 노력 중이다.


선생님, 선생님은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오늘 뭐 하실 거예요?

또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잠시 생각해보니 답은 분명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데 모여 음식을 나누고 포옹을 나누고 키스를 나눌 것이다. 사랑한다, 고맙다 수도 없이 말할 것이다. 어쩌면 두려움이 몰려올지 모를 정말 마지막 순간에는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꼭 잡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것이다. "에이, 그게 뭐예요. 저는 절대로 가족들이랑 있지는 않을 거예요." 내게 질문을 했던 아이가 말했다. "정말? 왜? 그럼, OO이는 뭐 하고 싶은데?" 태연하지 못한 나는 한 번에 세 개나 되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왜냐면요. 엄마는 맨날 잔소리만 해요. 저는 하루도 자유롭게 지낸 적이 없어요. 저는 일탈을 할 거예요." 아이는 답했다.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얼마쯤은 알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그럼 뭘 할 건데?" 내가 다시 물었다. "저는 친구랑 하루 종일 인터넷 게임을 하고요. 도둑질도 할 거예요." 아이가 소리 높여 답했다.


그 할머니는 임종 직전까지도 가벼우셨어. 야구광팬이라 병원에서도 노트북으로 야구 생중계 보면서 응원하고 그러셨어. 가족들과 사이가 좋으셨는데 가족들한테도 전혀 집착하지 않으셨고. 그렇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 가볍게. 우리 그렇게 살자.

운전을 하던 남편이 말했다. 가볍게 살자고. 그 때 생각났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 거라고, 더 많이 헤매고 떠돌아 볼 거라고 다짐했던 날의 내가. 그러고 보니, 어쩌면 내가 그려본 나의 마지막 하루나 내 학생이 그려본 그녀의 마지막 하루 모두에 남편이 이야기 한 그 '가벼움'이 살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하루는 너무 무거웠고, 그녀의 하루는 너무 힘이 없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또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커다란 질문들 앞에서 나는 늘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방안에 앉아 생각을 한다고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에라, 모르겠다. 이번 생은 그냥 방그르르 경쾌하게 살거다. 매일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요란도 떨고, 법석도 떨면서. 가볍게, 그래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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