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소정아, 혹시 영화 보러갈 생각있니?
며칠 전 한통 문자를 받았다. 나의 대학원 선배로부터 온 문자였다. 나에게 물꼬를 소개시켜 준 사람, 차생활을 알게해주고, 순수함이 무엇이지, 생각하는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 늘 귀촌을 꿈꿨던 언니는 지난 이년간 남편, 세아이들과 함께 지리산에서 지내다 얼마전 근처로 이사를 왔다. 언니의 메시지는, '우리 만날까? 영화를 봐도 좋고.'가 아니라, '우리 "영화" 보자!'로 읽혔다. 친구와 영화를 본 게 언제였던가. 오년 전쯤 한국에 들어오기 전 미국에서 폴란드 남자(사람)친구와 조조영화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설레인다. 오후에 잡혀있는 수업이 마음에 걸리지만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한껏 단장하고 나가야지 생각했는데 오늘의 아침도 어제와 다르지 않다. 어린이집 체육복을 입고 가는 날인데 입지 않겠다고 버티는 태율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집을 나섰을 때, 나는 버건디색 면 터틀넥에 블랙 롱니트 스커트, 검정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차라리 매일 교복처럼 입는 청바지를 입을 걸, 괜한 욕심에 걸쳐입은 스커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윤이를 등원차량에 태워보내고, 태율이까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와 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로션도 안 바르고 나왔네. 가방 속을 뒤져보니 썬크림 밖에 없다. 썬크림을 조금 짜서 얼굴에 쓱쓱 발랐다.
영화를 보러간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던 건 아니다. 되짚어보니 육개월에 한번 꼴로는 영화관에 갔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지쳐보이는 주말이면 남편은 영화표를 예매하고는 보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생각을 환기시키는 시간, 하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취하는 휴식은 응급처치에 가까웠다.
언니와 나는 만났다.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 영화상영시간은 12시 5분,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하원 전에, 그리고 내 수업 전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의 영화를 우리는 골랐다. 영화 시간에 늦을까 밥을 먹으면서도 몇번이나 시계를 확인했다.
일정을 고려해서 정해진 영화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출발하기 전 검색해봤는데 '퀴어영화'라고 했다. 하지만 장르 분류에 속으면 안 된다. 영화는, "퀴어"에서 연상되는 '색다름'이나 '이상함'이 아닌 그저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두 존재 사이에 오고가는 익숙한 떨림으로 가득했다. 이국적인 풍광은 아름다웠고 섬세하게 그려진 주인공의 심리묘사도 훌륭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특별함은 후반부 주인공 엘리오와 그의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아버지는 말한다. 너는 아름다운 우정을 가졌다고, 어쩌면 우정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아들이 부럽다고도 말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에서 모든 것이 지나가기를, 아들이 어서 다시 바로서기를 기도하겠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사랑으로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끌어 안으라고 당부한다. 빨리 괜찮아지기 위해 마음을 도려내기 시작하면 서른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모두 잘려나갈 거라고 말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언니와 나는 말없이 영화관을 걸어나왔다. 마음이 먹먹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영화가 좋았다고 겨우 한두마디 나누고 헤어져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차 안에 앉아 좀 울었다. 스무살의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