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 삶

생식하는 삶 그리고 치유

by 자유로

생각이 바뀌는 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이 말은 다른 여지가 없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유명한 격언과 결을 같이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그만큼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말은 사람을 고치는 것과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근원이 같다는 말이다.

이 말처럼 음식의 중요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나 본래 그대로의 생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말이다.

생각과 음식과 치유는 어떻게 관계가 있을까?

짧은 성찰이지만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끼를 드시는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는 너무도 당연한 리듬처럼 여겨진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음식을 먹지 않으면
무언가 안될 것 같은 막연한 불편함.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고, 때가 되었기에 먹는 우리의 식사.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정말 배고파서 먹는 것일까,
아니면 ‘먹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먹는 것일까?


우리는 종종 음식으로 우리의 감정을 다스린다.
심심해서 먹고, 외로워서 먹고, 지쳐서도 먹는다.
허기는 배에서 오기도 하지만, 마음에서 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삼킬 때,
그것은 위장이 아니라 삶의 공허를 채우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생식(生食)을 해보면 조금 다르다.
익히지 않은 음식은 조심스러워진다.
질기고 단단한 재료는 입안에서 오래 머문다.
천천히 씹지 않으면 삼키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음식의 본질과 나의 욕망이 천천히 마주하게 된다.


급하게 먹을 수가 없다.
급한 마음은 씹는 속도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양’이 줄고,
그만큼 욕심도 가라앉는다.

씹는 속도가 느려지면
생각의 속도도 느려진다.
천천히 씹고, 천천히 삼키고,
천천히 살아가게 된다.


식탁은 단지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공간일 수 있다.


우리는 먹는 것을 조절함으로써
우리 삶의 리듬도 바꿀 수 있다.
시간에 끌려 다니던 식사에서
욕망에 휘둘리던 식사에서
의식 있는, 선택하는 식사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음식은 곧 삶이다.


어떻게 먹느냐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의 반영이다.

많이 먹는다고 풍요로운 것도 아니며
적게 먹는다고 궁핍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깨어 있는가,
얼마나 의식하며 먹는가,

얼마나 스스로 '나답게' 온전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얼마나 자신과 화해하는가이다.


아침에 허기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젯밤 충분히 먹었기 때문일 수 있다.
점심이 그다지 간절하지 않다면
몸이 지금 충분히 충만한 것일 수도 있다.
굳이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

내 몸이 진짜로 원하는 때,
딱 필요한 양만큼 먹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한 식사일 터이다.


음식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매 끼니마다 되묻는 조용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먹는 존재’에서
‘살아 있고 스스로 치유하는 존재’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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