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좌충우돌 의료 생태학자의 창업 이야기

by 자유로

강릉에 갔다


탁 틔인 동해가 눈앞에 선하고 맛난 두부는 덤으로 먹을 수 있는 강릉...


임업후계자 교육을 받고 그곳이 좋다며 별안간 어머니께서는 강릉 사천 해변으로 이사를 하셨다


어머니 덕분에 임업후계자의 길을 함께 걷던 차, 집에 갈 때마다 강릉 과학 산업 단지 앞을 매번 지나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기는 뭐 하는 곳일까? 한번 가보고 싶네.' 문득 뇌리를 스친 생각은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계속 되풀이되었다.


'한번 가보고 싶네...'

시간이 지나고 그곳이 강릉 해양바이오산업클러스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릉과학기술단지.jpg


줄곧 우리 몸의 대사 문제와 요로 결석에 대한 미네랄 영양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차...

해양 자원과 임산 자원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날들이었다.


주말이면 격무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겸 강릉으로 향하던 3월의 끝무렵...

우연한 계기로 어머니께서는 해양 바이오산업 단지에서 근무하시는 직원분을 만나셨고 그곳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현재 입주 기업을 모집한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적지아니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기회라고 여긴 나머지

무작정 공문을 읽어 보고는 입주신청서를 바로 작성했다.


'입주 신청서라고??'


'아니 들어가서 뭘 하려고??'


'창업이라고??'


벌써 5년 전쯤 코로나 팬데믹이 막 사회적 이슈가 될 무렵...

무작정 홀로 개업을 했었다. 하기사 그거야 늘 하던 일의 연장이었으니 내 의원에서

성심껏 환자 진료를 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가 얼어붙다시피 했다.

병의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기회였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상실의 시기

바로 그 시점이었을 것이다.


개업 후 환자 진료만이 아니라 직원 문제며, 또한 병원 홍보며, 세금 문제 등등...

그간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결국 2년 반 만에 나의 첫 창업은 폐업의 수순을 밟았다.

아직도 당시 받은 대출금을 갚느라 여념이 없다.

다시는 내 돈을 들여서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났다.


새로이 일하는 곳에서 늘 해보려고 했지만 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맴돌았던 것들을

이제야 한번 해보자는 용기가 다시 샘솟았다.


늦었음을.jpg



너무 늦었음을 한탄치 말고 매일 꾸준히 하지 못함을 경계하자란 마음으로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가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이었고

그 두 번째가 바로 제2의 창업이었다.


제2의 창업은, 하지만, 결코 또 다른 개업은 아니다.

물론 개업을 하더라도 아마 제법 훗날이 되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지금은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여겼다.

내 삶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도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다.


덕업을 일치코자 내가 지금 가장 오래 하고 있는 것을, 가장 잘 즐기면서, 가장 깊이 있게

묻고, 파 들어가고 싶었다.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새로운 변화를 직접 내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강릉 바이오.jpg


그 무대가 바로 강릉 해양바이오클러스터가 되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나의 문제'를, '나의 소명'을
다른 이들에게 묻고 다녔다. 다른 이들에게서 해법을 찾으려 했었지만 모두 그들은 어렵다... 힘들다고만 했다.


이렇게 하면 이게 문제고 안된다. 저렇게 하면 저게 문제라서 안된다고 했다.

이런 얘기들에 더 이상 함몰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도 않은 그들에게 해법을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이 나이가 돼서야 깨닫게 되었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내 문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


이 것은 현재 하고 있는 내 업의 본질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업'은 내 삶의 방향을 적지 아니 틀어놓았다. 의사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선망일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된다는 것이 커다란 부담인 때가 있었다.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알고 실망한 적도 많았다. 한때는 더없이 피하고 싶었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서 나는 내가 하는 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안에서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사람다움을 깨닫고 보람을 느끼라는 운명의 안배일지 모른다. 어쩌면 누구보다 더 내 업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래 어쩌면 누구보다 내 업을 사랑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 15년이 지난 이제야 조금 의사다운 직업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한 길을 걸으면서 그 안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내면의 질문에 답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인 걸까?


내시경적 수술이나 체외충격파 쇄석술과 같은 요로 결석 치료 이후 재발 방지와 예방을 목적으로 비뇨의학과 전문의로서 특별히 해줄 것이 없음에 심한 갈증을 느껴 왔다.


부작용이 없으면서,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심리적 저항이 그다지 크지 않은 방법...

그리고 현재 나타나는 질환들이 궁극적으로 왜 나타나는지에 대한 궁금증...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책을 찾아보고, 각종 연구 논문을 뒤지며,

다시 진료를 보고 적용해 보며 연구하길 반복했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여서 두 번째 창업이란 형태로 세상에 없는 내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다시금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결코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ac9bae1ff1dfe27dde8e2e6a29332c68.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정한 K-culture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