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몰라도 나는 기억한다(2)

언어지연 탈출기

by 빛나볼게요

보아하니 이건 몇 달만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번 이런 식으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는 건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언어지연’, ‘언어치료’, ‘언어치료센터’...

떠오르는 단어들을 끝없이 반복해서

검색하다가, 병원이 아닌 좀 더 편안한 공간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히 동네에서 멀지 않은,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언어치료센터를 찾았다.

가정 어린이집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그곳은

처음부터 마음이 놓였다.

원장님은 언어치료 경력이 오래된 분이었고,

무엇보다 아이와 나에게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나는 그게 참 좋았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세돌 생일엔 생일축하 노래도 같이 부를 수 있겠지?"
그런 기대는 결국 무색했다.

그날, 여전히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우리 아가는 아주 큰 언어 그릇을 가진 거야.

그 그릇을 다 채우고 말하려고 지금 준비 중인 거야.’

그렇게 또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랑해주자, 더 사랑만 해주자 다짐했던 것 같다.

발달은 다양한 영역이 함께 채워져야 한다기에

놀이치료, 언어치료, 통합감각치료까지 뭐든 병행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새로운 자극이 말을 트이게 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놀이공원, 산, 바다…

그냥 갈 수 있는 곳은 다 데려갔다.

그때 제일 힘들었던 건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이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에게 기다림은 고역이었고,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세돌이 지나고, 아이가 나를 보며 눈을 맞추고

"네~" 하고 대답했을 때 그 짧은 한마디가

얼마나 반갑고, 귀여웠던지.
나는 또 생각했다.
‘네돌 생일엔 꼭 같이 노래 부를 수 있겠다!’

그 생각이 드니,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이는 분명 성장하고 있지만 나는 또다시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초동의 아이 전문 병원.

주차장이 협소해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야 했다. 여름이면 그 짧은 거리가 얼마나 더웠던지,

오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아이는 아이스크림,

나는 아이스커피를 하나씩 들고 걷곤 했다.

그래,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그리고 겨울.
아침부터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오늘은 운전 조심해야겠다’ 다짐하며

부지런히 서둘렀다.

공영주차장에 무사히 주차를 마치고,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이 가까워질 무렵, 좁은 사거리 빙판길에서

그만 미끄러졌다. 아이를 감싸려 옆으로 넘어졌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정말 아팠다.

그리고 너무 창피했다.

사방이 카페와 음식점으로 둘러싸인 오피스 거리.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러 가는 또래 직장인들 사이에서아기띠를 맨 채 넘어진 나.

그렇게 나는 또 ‘엄마’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깔깔 웃었다.

재미있단다.
그래, 너만 안 다쳤으면 됐다.

나는 씩씩하게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옷이 젖었지만 시간은 맞췄다.

수납창구에 가자 직원이 괜찮냐고 물었다.

그제야 손목이 시큰거리는 게 느껴졌다.

직원이 건넨 뿌리는 파스를 고맙게 받아 뿌렸다.

그리고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또 검색했다.


‘아기에게 파스 괜찮을까?’


역시나 안 좋단다.

아이 나오기 십 분 전,

화장실에 가서 급히 파스를 닦아냈다.
그렇게, 그 겨울도
우리 아이의 ‘네 돌’을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