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라는 불완전성
<세계의 주인>에서 텍스트는 매우 중요한 의미로 작용한다. 편지라는 것, 즉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쓰인 글은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일방적인 방식으로 기능한다. 주인에게 지속적으로 발송되었으나 차단되어온 삼촌의 편지와, 화자가 명시되지 않은 채 주인에게 남겨지는 익명의 쪽지가 그 예다.
영화 속 몇 줄의 텍스트는 지속해서 주인을 서서히 흔든다. 편지, 즉 ‘쓰인 글’은 기본적으로 솔직함을 내포하지만, 동시에 자기 방어적 성향을 띄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텍스트는 솔직하면서도 어설픈 마음의 형체이다. 그렇기에 글 한 줄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호가 전교생 서명운동 상단에 쓴 단 한 줄의 문장이,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인의 동의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선의라는 미명 아래 수호는 자신의 텍스트를 전교생에게 드러내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가시 같은 부분들을 알아채지 못한다. 반대로 주인을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해온 익명의 쪽지 속 텍스트는 철저히 숨어 전달되며, 가시를 대놓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주인을 찌른다. 대놓고 드러난 가시는 어느 정도 방어적으로 중요한 알맹이를 감싸고 있다.
주인의 동생이 마술로 텍스트를 지우려 하고, 삼촌의 편지를 감추려 했던 이유 또한, 오랫동안 가족을 괴롭혀 온 텍스트들로부터 서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텍스트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마지막에 여러 사람의 육성으로 읽혀지는 텍스트는, 텍스트가 야기하는 수많은 불편함 속에서도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며, 오해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을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삼촌의 편지 내용을 관객에게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주인의 동생이 수많은 고민 끝에 쓰고, 다시 구겼다가, 또다시 적어 내려간 그 ‘쓰다 만 한 줄의 글’을 우리에게 남긴다. 그 불완전한 문장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도달하기 위한 텍스트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