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회사원의 특별한 인생 2막 도전기 ep.23

영혼까지 털어간 CPL 구술테스트!

by 한스브로

오늘은 지난 에피소드에 이어 말로만 들어왔던 전설 속 주인공이 된 나의 CPL(Commercial Pilot License, 사업용 조종사자격증) 과정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FAA(미국 항공청) 시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교내 시험포함 10여 차례 시험 중 최후의 마지막 시험이어서 시험 당일 긴장하기도 하였는데, 1명의 감독관과 2명의 감독관의 감독관 앞에서 학교를 대표하는 듯한 시험을 봐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되었다.

이런 긴장감, 부담감, 오늘 시험만 잘 끝내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 등 복잡한 심정을 뒤로하고 감독관들이 있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된 수족관 강의실로 들어갔다.

감독관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오늘은 나도 평가를 받는 날이면서 자기도 평가를 받는 날이고 옆에 2명은 자기를 평가하는 것이니까 투명인간 취급하라면서 수석교관이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였다. 그런데 2명의 감독관의 감독관 중 1명은 전형적인 거구의 미국 형님이어서 너무 눈에 잘 띄어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작된 구술테스트!
내가 비행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구술 테스트 후 비행 실기시험을 볼 비행기가 비행할 수 있는 상태인지 서류 검증부터 시작하였다.

사진이 붙어있는 신분증, 기존에 취득한 PPL(Private Pilot License), IR(Instrument Rating) 자격, 화이트카드라 불리는 신체검사 자격, 교관의 추천(Endorsement), 나의 비행과정과 시간이 기록된 log book 등 자격 하나하나 언제 취득했는지, 유효한 자격인지, 훈련과정과 비행시간 등을 꼼꼼히 살피며 그냥 넘어가지 않는 감독관!!

이어서 진행된 ARROW PC(Airworthiness, Registration, Radio license, Operating handbook, Weight & Balance, Placards, Compass deviation cards)라는 약자로 외웠던 항공기가 비행이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하는 서류와 AVIATE(Annual, VOR, 100 hrs, Altimeter, Transponder, ELT)라는 약자로 외웠던 항공기 정비상태 관련 서류 검증과 설명하는 과정이 빠짐없이 이루어졌다.

이런 서류검증은 일반적으로도 감독관이 구술테스트 시험 때 진행하는 과정이긴 한데, 하나하나 FM대로 확인을 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만 일반적인 경우보다 2배 이상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나의 CPL 구술시험은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험이 진행되면 보통 2시간을 넘기지 않는 시험시간이 4시간은 넘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이런 불길한 예감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서류 검증 및 설명이 끝나고 바로 이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마구마구 날려주는 감독관!!! 데드볼 맞고 실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마지막 고비만 넘기면 사업용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던 것 같다.

사업용 조종사로서의 권한과 의무, 비행 전 음주규정(조종사들도 비행 전 음주단속에 걸리면 자격정지 및 취소가 되어 내 주변의 조종사들은 전날부터 술을 안 먹어 만나면 음료를 체할 때까지 마신다.) 등의 비행 관련 법, 규정에 대해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감독관은 이어서 비행 관련 이론, 기상, 항공기 시스템 등에 대해서 단순 단답형이 아닌 시나리오 베이스의 질문을 하고, 나는 술술술 주문을 외우듯이 설명을 하였고, 감독관의 감독관은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시나리오 베이스의 질문은 교내체크 때부터 준비를 했던 내용이어서 외웠던 내용을 기계적으로 답변을 했는데 감독관의 감독관들이 보기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잉글리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콩글리쉬 발음으로 술술술 답변하는 게 신기했는지 절대 투명인간으로 볼 수 없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마구마구 날렸다.

사실, 이렇게 술술술 답변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한국학생들 사이에 전설의 비법처럼 내려오는 감독관별 맞춤형 족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술테스트에 나온 질문들을 모아 모아서 모범답변까지 감독관별로 정리한 자료인데, 사실 족보의 내용이 CPL과정을 다 정리한 것이라 양이 방대하여 족보만 봐도 CPL이론을 다 섭렵할 수 있기는 하였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며 알코올과 니코틴으로 이미 뇌세포가 많이 손상된 머리로 모범답변이 술술술 나올 정도로 외우는 데는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는 족보의 내용 중에 60% 정도만 시험에 나왔는데, 이날은 감독관이 뼈대 있는 집안의 족보임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족보에 있는 내용 100%+알파를 물어보며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져가면서 4시간 가까이 시험을 보았다.

쉬는 시간에 잠깐 화장실도 가고 물도 마시러 나왔더니 비행이 없던 예비 파일럿들과 교관들이 모두 수족관 강의실 앞에서 나의 시험과정을 지켜보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관상용 물고기가 된 것 같기도 하였지만 후반전도 잘 뛸 수 있게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었지만 감독관이 숙제를 내주었는데 감독관과 감독관의 감독관중 거구의 미국형님 몸무게를 알려주며 비행이 가능한지 CG(Center of Gravity, 무게중심) 계산을 해보라 하였다.시소에서 양쪽의 균형을 맞춰주는 받침대처럼 비행기의 균형을 맞춰주는 무게중심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탑승객, 화물, 연료, 비행기의 무게를 계산하여 CG가 일정범위 안에 들어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타는 여객기들도 이런 부분을 고려하여 화물의 무게와 위치를 잡고, 승객인원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거구의 미국형님이 비행까지 따라 탄다는 말을 듣고, 구술테스트도 이렇게 힘든데 비행시험에서는 또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들면서 전생에 내가 그 미국형님한테 무슨 큰 죄를 지었나 싶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주매우 다행스럽게 계산을 해보니 내가 시험을 보기 위해 잡아놓은 비행기의 자체중량과 거구인 미국형님 무게가 많이 나가서 CG가 안전범위를 살짝 벗어났다.

그리고 감독관도 미국형님을 태우고 싶지 않았는지 계산을 하고 있는데 오더니 결과를 듣고는 윙크와 함께 엄지 척을 날리면서 다시 시험을 재개하자며 강의실로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시간에서는 여러 가지 비상상황에서의 판단과 대처에 대한 질문과 Weight&Balance라고 해서 쉬는 시간에 계산한 CG에 대한 질문 등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계산한 오늘의 CG를 고려하여 기장으로서 비행을 결정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FM대로 비행은 안전이 최우선이고 CG가 안전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미국형님을 태우고는 비행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감독관은 싱글벙글 표정으로 좋은 판단인 것 같다 하고, 미국형님은 내가 계산한 것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마침내 수긍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감독관이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Goooood job'을 연신 외치며 비행을 하러 가자며 먼저 나가서 준비를 하고 있으라 했다.

감독관의 FM질문에 FM대로 답변을 했더니, 감독관도 자신에 대한 평가에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았다.

구술테스트에서 패스하지 못하면 비행을 못 나가고 일정을 다시 잡아 재시험을 보게 되는데, 비행을 가자하는 것은 일단 가장 큰 산을 넘은 것이었다!

사실, 나는 비행보다 구술테스트에 더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도 감독관의 감독관까지 참관시키며 4시간 가까운 시험을 패스했다고 하니 기쁘기도 하면서도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비행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강의실을 나오니, 밖에서 응원을 하던 다른 예비파일럿들과 교관들이 축하한다며 힘을 북돋아주었다.
아마, 내가 비행학교를 다니던 동안 이렇게까지 응원을 많이 받으며 시험을 본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나의 영혼까지 털린 것 같았던 CPL과정의 FAA 구술시험이 끝났고, 비행시험이 이어졌는데 반전 있는 비행시험 에피소드는 다음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