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회사원의 특별한 인생 2막 도전기 ep.24

유쥬얼서스펙트 저리가라 하는 CPL 시험

by 한스브로

나는 30년 전 영화이기는 하지만 '유쥬얼서스펙트'를 최고의 반전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CPL 시험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끝나기를 바랬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은커녕 '유쥬얼서스펙트'만큼이나 반전의 반전이 이어졌다.


오늘은 지난 에피소드의 영혼까지 털린 CPL 구술시험에 이어 CPL 비행시험 이야기로 이어가 보려 한다.


ep.23에서처럼 나는 남들 2시간이면 끝나는 구술테스트를 4시간에 걸쳐 시험 보며 이미 비행시험까지 끝냈어야 하는 시간이 다되어서야 구술시험을 마쳤다.


구술시험에서 절대 투명인간으로 볼 수 없었던 거구의 형님이 비행시험까지 따라오려고 했으나, 다행히 CG(무게중심) 범위를 벗어났고, 안전한 비행을 위해 거구형님은 못 타는 것으로 기장으로서 판단을 내렸고, 감독관도 이에 동의를 하며 나는 먼저 나와서 비행 준비를 하였다.


내가 비행할 비행기의 정비이력은 이미 구술시험 중에 확인을 했었고, 공항 주변의 기상과 NOTAM(Notice to Airmen, 실시간 공지사항)을 확인하며 비행준비를 하고 있는데, 감독관이 감독관의 감독관들하고 이야기가 끝나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충격과 공포였다!!


나의 비행에 못 따라 타서 아쉬움을 나타냈던 거구의 형님이 나랑 무슨 원한이 있길래 학교에 이야기를 해서 내가 예약했던 비행기 말고 다른 비행기로 교체하여 따라 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ㅜ.ㅜ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속으로는 육두문자가 날라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나도 모르게 방긋방긋 웃으며'No problem'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나란 놈!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같은 기종이더라도 비행기마다 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고 교육 중에 개인별로 선호하는 기체가 있는데 FAA시험 일정이 잡히면 학교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FAA시험을 보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선호하는 비행기를 예약 잡아줬다.
그래서 나도 내가 교육 중에 비행이 잘 됐다고 생각되던 비행기를 잡아놓은 것이었는데 비행기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탐탁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지못해 비행기 변경을 알아보았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생긴다고 다른 기체들이 비행을 방금 나갔거나 정비 때문에 비행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구술테스트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미국형님도 시간을 오래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을 미국 형님은 아쉬워했지만 나와 감독관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절대 만나지 말자고 하면서 겉으로는 잘 가라고 인사를 하였다.


그들을 보내고 헤비 스모커였던 감독관과 만만치 않게 골초였던 나는 일단 담배부터 한 대 피우면서 이날의 비행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애연가들끼리 담뱃불을 붙여주면서 유대감을 쌓아가며 담배로 동서양을 이으며 'we are the world'를 실천했던 기억이기도 하다.


감독관은 구술시험이 'Perfect' 했다며 미국 사람 특유의 약간은 과장된 칭찬을 해주었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4시간의 시험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에게 큰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런데 줄담배를 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감독관도 나도 이날 아침부터 너무 에너지를 많이 쏟아내기도 하였고, 시간이 오후가 되면서 뜨거운 애리조나 태양빛을 받은 지열로 인한 상승기류와 바람이 좋지 않기도 하고, 비행기를 여유 있게 예약해 놓았긴 했지만 길어진 구술시험으로 다음 예약 때문에 비행시간도 여유 있지 않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비행시험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PPL, IR, CPL과정의 FAA시험을 평가하는 감독관은 학교에 보통 1주에 1~2번씩은 와서 시험 평가를 하는데, 며칠 뒤 학교에 올 일이 있으니 그때 와서 재미있게 Fun 비행을 하기로 의기투합하고 힘들었던 하루를 마쳤다.


일단 가장 큰 고비를 넘겼고,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내며 쌓은 감독관과의 유대감으로 비행도 부담 없을 것 같아서 CPL 취득은 며칠 미뤄지긴 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가장 선호하는 아침 두 번째 타임에 비행시험이 정해졌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통 때보다 여유 있게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구술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수석교관이 나를 찾는다 하여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찾는지?', '설마 지난번과 같이 평소 같지 않은 상황에서 평소대로 하라고 하는 건 아닌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수석교관실에 들어가니 감독관과의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던 중 나를 반갑게 맞으며 지난 구술테스트에 대한 칭찬을 마구마구 날려주는 수석교관의 센스! 이번에는 나의 불길한 예감이 틀린 것 같았다!!
그런데 역시 사람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한다는건 전세계 공통임을 알게됐다. 칭찬의 마무리는 오늘도 평소와 같지는 않지만 평소처럼 비행을 하라며 비행기도 거구의 형님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로 준비해 놨다는 내용이었다!! ㅡ.,ㅡ
이번에도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던 것이다.


구술시험 때 왔었던 그 거구형님이 내비행을 따라 타지 못했던 것이 한이 맺혔는지 오늘 내 비행시험 때 다시 와서 동승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반전은 안 일어나도 되는데, 며칠 사이에도 FAA시험이 있었을 테고, 이날도 나에게 배정된 감독관의 FAA 시험평가가 나만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굳이 내 비행을 따라오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얄궂은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비행준비에 만전을 다하자고 마음먹고 비행준비에 들어갔다.

비행기 자체중량과 구술시험 때 알려준 감독관과 거구형님의 몸무게를 적용하여 Weight&Balance 계산을 통한 CG(무게중심)가 안전범위 내에 있는지 확인을 하고, 공항 주변의 날씨를 확인하고, 기온과 기압에 따른 비행기 퍼포먼스를 구한 후 이륙과 착륙에 필요한 활주로의 거리 계산을 하며 비행준비를 마쳤다.

감독관과 거구형님이 나오고 마침내 시작된 비행시험! Pre-flight Inspection이라고 비행 전 비행기 외부상태 점검부터 시작을 하였다.

이 과정은 비행 때마다 반복하여 절차와 순서가 몸에 배었지만 체크리스트를 보아가며 하나하나 점검을 하여야 한다. 기장의 기억과 지식에 의존하다 혹시 모를 절차의 생략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위협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며칠 전 담배를 피우며 Fun비행을 하자던 그 감독관이 외부점검 과정부터 옆에 붙어서 절차별로 이건 왜 하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건지? 꼬치꼬치 질문을 하며 Fun비행은커녕 Fuxx비행을 하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 비행기 조종석에서부터 시작하여 밖으로 비행기 한 바퀴를 돌며 외부점검을 마치고, 거구형님은 뒷좌석 감독관은 옆좌석에 태우고 승객브리핑 후 엔진시동을 걸고 활주로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이륙을 위한 활주로 진입 전 엔진이상유무를 체크하는 Run-up과정을 거치고 활주로 진입준비를 하는데, 감독관이 Short field Takeoff(이륙)을 지시하였다. Short field Takeoff는 일반적인 이륙절차와 달리 짧은 활주로에서 급상승을 통해 활주로 앞에 있는 장애물을 회피하는 이륙이다.
(활주로에 진입하면서 천천히 속도를 올리는 일반적인 방식의 이륙과 달리 활주로 끝에 붙어서 진입하여 활주로를 최대한 이용하고,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엔진을 최대치로 올린 후 브레이크를 풀면서 눌려있던 스프링이 튀어나가듯이 이륙을 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Short field Takeoff를 할 때는 관제탑에 미리 요청을 하고 허가가 있어야 가능해서 나도 활주로 진입 전 요청을 했었고, 관제탑에서 승인을 해주며 'Line up and Wait'이라고 활주로에 진입 후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활주로에 진입 후 브레이크를 밟고 엔진 full power 상태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 후 나는 관제탑에서 당연히 'Clear for Takeoff' 이륙허가를 지시할 줄 알았는데, 나는 계속 대기시키고 다른 비행기에게 활주로 중간에서 나보다 먼저 이륙허가를 지시했다.
일반적인 이륙 때는 경우에 따라 이런 경우가 있었지만 브레이크 밟은 상태에서 엔진 full power 상태가 길어지는 Short field Takeoff 때는 처음이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기가 길어지면서 내가 느끼기에는 엔진이 터질 것 같았고, 엔진 power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감독관은 아무 이야기가 없었고, 나는 감독관을 쳐다보며 지금 상태로 계속 대기해도 괜찮냐고 말을 걸다가 브레이크가 살짝 풀리며 앞으로 미세한 이동이 있었고, 나는 즉시 다시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그 순간 감독관은 'Fail'을 외쳤다.
이건 정말 Fun 비행이 아니고 시작부터 Fuxx비행이었다. 갑자기? Fail을?

사실, Short field Takeoff 때 출발 전 움직이면 fail 사유가 되기는 한다. 그런데 이번 상황은 좀 억울하기도 ㅜㅜ 아마 뒤에 거구형님이 없었으면 감독관도 fail을 외치지 않았을 듯!

이건 비행을 시작하고 첫 교내 시험에서는 선크림 때문에 어이없게 이륙 중에 fail 됐는데(ep. 12 참고), 마지막 시험에서 더 어이없게 이륙도 하기 전에 fail을 당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버렸다.

감독관은 오늘 시험은 이미 fail이지만 부분합격을 원하면 계속 비행을 해도 되니 'go' or 'no go'를 결정하라 했다. 옛날 아재들만 아는 이휘재의 인생극장도 아니고 뭐 이런 걸 선택하라 하는지 그냥 자기가 결정하면 되지 ㅎㅎㅎ

나는 뒤에 거구 형님이 내가 no go로 결정하면 다음에는 안 따라 탈까? 기왕 이렇게 된 것 go 해서 하는 데까지 해보고 재시험을 최소화할까? 잠시 고민을 하였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끊고 , 'go' or 'no go'결정부터는 다음 에피소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