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눌님은 보살님
잘 다니던 대기업 그만두고
불투명한 미래에 만만치 않은 비용까지!
거기다 당시 결혼한 지 2년 갓 넘은 신혼에
돌도 안된 아들까지!
마눌님과 양가 어르신들을 모두
설득하기에는 첩첩산중인 상황!!
입장을 바꿔 나라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듣고 쉽게 허락해주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 계획을 말로만 이야기해서
설득하는 건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아서
회사생활에서 배운 엑셀과 PPT 등
모든 문서작업 기술을 총동원하여
향후 15년간의 소득, 지출 데이터를 정리하여 보고서로 만들어 비장의 무기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보고서 만들 때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서 교육과 주거비용은 물론 교육기간 까먹을 월급에 대한 기회비용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임금인상,
파일럿이 된 후의 연봉 등을 비교 반영하고 그럴듯한 숫자가 나오게끔 인위적 조작을
살짝 가미하여 가족들이 보기에
혹하는 자료를 준비!

이 자료에 따르면 교육시작 후 11년이 지나면서부터는 교육비용과 기회비용 등을 회수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겨
회사에 남아 인생 1막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파일럿이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라는 것을
숫자로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미 11년이 지났는데,
인생 2막이 아닌 3막을 살고 있는데,
인생의 관점이 아닌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면
실패한 투자가 되어버린! 근데 심지어 대학 때 전공이 경제학이었는데! ^^;

각설하고, 다시 돌아와서 이 정도 보고서면
당시 회사생활에서 보고서 작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욕쟁이 임원분이 계신데
그분께도 욕 안 먹고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족들을 설득할 자신감 뿜뿜!!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그 욕쟁이 임원분께
가장 고마웠던 때가 이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비장의 무기를 완성 후
육아에 지친 마눌님의 기분을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려하는데,
눈치 백 단인 마눌님은
이미 뭔가 큰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음!
하지만, 마눌님은 자기가 눈치가 빠른 게 아니고, 티를 그렇게 내는데 못 알아채면 그게 곰이지 사람이냐며 무슨 사고를 치려고 하는지
돌려 말하지 말라해서 돌직구를 던져버림!!
(잠시 대화체로 전환해서)
나 : 사표 쓰고 조종사 자격증 따러 미국 가고 싶어!
어린 시절 포기했던 꿈인데 알아보니
파일럿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지금이 마지막 도전할 수 있는 기회!
파일럿 되면 전문직으로 연봉도 좋아!
마눌님 : 그럼 자격증 따오면 항공사 취업은 보장?
나 : 100프로 장담은 못하지만,
요즘 저가항공사에서 조종사 수요가 많고, 대형항공사로 이직하지 않을
회사경험 있는 30대 중반도 선호한다 하니 가능성은 충분!
(잠시 생각한 후)
마눌님 : 비용과 시간은?
나 : 교육 시작 후 취업까지 빠르면 2년,
늦으면 3년 이상, 교육비와 생활비 포함 비용은 최소 2억 필요 예상
마눌님 : 자금조달 방법은?
나 : 퇴직금과 집 팔아서 ㅡ,.ㅡ
(다시 생각에 잠긴 후)
마눌님 : 택도 없는 사업 한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한번 못 들어줄 것도 아니고, 미국 갔다 와서 조종사 안되더라도 영어라도 배워서 밥벌이는 하겠지!
라고 하면서 쿨하게 "오케이"를!!!
이거 완전 뭥미??

심혈을 기울인 비장의 카드도 안 꺼냈는데,
아묻따 오케이를 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너무 쿨하게 오케이를 해버린 마눌님!
정말 이때는 찰나였지만
마눌님 뒤로 후광이 비치며,
마눌님이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보살님 같아 보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진짜 이유는
이때 말렸으면 평생 이일로 자기를 원망할 것 같고, 이런 대형 이벤트는 평생 1번만 열어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는데, 계속 냅뒀다 과부 될 것 같았다는
웃픈 이유도 있었다.
일단 가장 큰 산인 마눌님을 넘었으니,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여
다음 산인 양가 어르신 설득작업에 착수!
결론은 둘의 인생이니 둘이 알아서 결정하라 하시는 쿨한 양가 어르신!
생각보다 반대가 심하지 않아서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하였지만
자식을 믿어주시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선택에 대한 책임과 부담이
마음 한쪽에 깊이 새겨졌다.
이렇게 가장 큰 산인 가족 설득을 마치고
인생 2막 준비에 탄력을 붙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