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회사원의 특별한 인생 2막 도전기 ep.30

패스되지 말고 패스하기!

by 한스브로

그동안의 이야기가 인생 2막 준비와 웜업을 위한 과정이었다면 오늘의 이야기는 진정한 도전과정이 될 것 같다.

미국에서의 비행교육과 조종사 자격증 취득을 마치고 돌아와 우리나라 자격증으로 전환 후 드디어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항공사의 조종사 채용공고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내가 가고 싶었던 두 곳의 LCC항공사 중 한 곳이었던 A항공사의 채용은 나이제한으로 지원자격이 안되어 패스트트랙처럼 빠르게 패스가 되었고, 가고 싶었던 두 곳에는 해당되지 않았던 B항공사의 채용공고가 연이어 올라왔다.

그런데 사실 내가 물불 가릴 처지는 아니고 가고 싶던 아니던 어디든 불러만 주면 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원래부터 B항공사만 가고 싶어 했다는 듯이 정성을 다해 자기소개서를 쓰고 서류를 제출하였다.

항공사의 채용과정은 보통 서류-필기시험-SIM check(시뮬레이터 시험)-1차 면접-2차 면접 순으로 진행되는데 B항공사도 이런 절차에 따라 채용을 진행하였다.

서류는 CPL(Commercial Pilot License, 사업용조종사자격증) 보유여부, 기준시간 이상의 비행시간 등 자격만 갖추면 다 붙는 것 같았다. 정성을 다해서 작성한 자기소개서가 아까운 느낌이 들정도였지만, 면접 때를 대비하여 자기소개서는 정성껏 작성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위안을 삼았다.

필기시험은 항공사별로 차이가 있었으나, CPL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했던 범위 내에서 커버가 가능하였다.

그런데 B항공사의 시험은 국내용어 중심의 시험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우리말인데 우리말 같지도 않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표현이 많아서 오히려 더 알쏭달쏭해서 애를 먹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알쏭달쏭한 문제보다 나를 더 애태웠던 것은 생각보다 높은 경쟁률이었다. 필기시험장을 가보니, CPL취득자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경쟁률이 약 10:1은 되었던 것 같다. 경쟁자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물론이고, 내가 처음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CPL을 이미 취득해서 한국으로 돌아가 부러워했던 친구들도 보였다.

부러워했던 친구들이 보였다는 것은 CPL만 따면 에어라인 조종사가 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고, 지원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나는 자칫하다가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장롱면허 중에 하나를 보유하게 생긴 상황에 맞닥드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필기시험과 SIM 시험을 준비하였다.

이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같이 비행을 했던 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먼저 과정을 끝내고 항공사 입사가 결정된 동생들, 그리고 나와 같이 채용을 준비했던 동생들이 물심양면으로 시험에 대한 정보와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특히, 함께 채용을 준비했던 동생들은 요즘 보기 드물게 장유유서의 경로사상과 선입선출의 경제관념까지 투철하여 같은 경쟁자이면서도 말이라도 자기들은 기회가 많으니 연장자인 내가 먼저 빠져나가라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다.

필기시험 준비도 같이 하고, SIM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할 때 온갖 레이다를 돌려가며 수소문 끝에 찾아낸 SIM 연습할 수 있는 곳을 공유해 주며 함께 연습하기도 하였다.

이런 지원 덕분에 필기와 SIM 시험을 보다 수월하게 통과하여 면접 단계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SIM시험까지 통과가 걱정이었지 면접단계에서부터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뿜뿜하고, 나이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비행지식 관련해서는 지원자들이 모두 잘 준비해서 차별성이 없더라도 나의 인생 1막을 통한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인생 1막은 이 글의 제목처럼 평범하지는 않았고 일반적으로 겪기 힘든 엄청나게 특별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아마 글로 쓰면 인생 2막 못지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기장으로서 중요한 덕목인 의사결정, 책임감 등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면접은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하는 다대다 방식이었는데 생각보다 면접 시간이 여유있지는 않아서 1인당 질문이 많지는 않았다.

비행지식에 대해서는 변별력이 있을까 싶은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고, 비행교육과정 중에 경험했던 사례를 들어가며 답변을 하였다. 그 외에 개인별로 1-2개의 질문을 추가로 받았고, 다대다방식이어서 다른 면접자의 질문과 답변을 들으며 면접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나에 대한 면접관들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나쁘지는 않아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1차 면접을 마쳤다.

그리고 며칠 후 면접결과 발표일!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ㅜㅜ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면접 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와 더욱 실망이 컸었다. 짧았던 면접시간이 나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어필하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았다.

이런 실망스러운 결과를 마눌님도 궁금해할 텐데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정보력과 감 좋기로 소문난 마눌님이 대충 눈치를 채고 오히려 나에게 애초에 내가 가고 싶어 하던 C항공사 공고가 곧 나올 텐데 C항공사 가자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Ep.3에서처럼 마눌님은 보살님 같기도 했지만, 때로는 나보다 더 테스토스테론이 뿜뿜한 테토녀 처럼 행동하며 나의 심적 부담을 줄여주려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지원자격이 안되었던 A항공사는 패스트트랙으로 패스되고, B항공사는 좋은 분위기 속에 패스되면서 잠시 슬럼프에 빠질 뻔했지만, 마눌님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제일 가고 싶었던 C항공사는 패스되지 않고 패스하자고 다시 한번 전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