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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즈 Jun 24. 2024

그녀, 나의 수호천사!

우리 앞집엔 천사가 산다

지난해 늦여름과 가을 난 천사와 함께 야간 데이트를 즐겼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나는 천사에게 전화를 걸어 데이트를 신청한다.

천사는 거절하는 법이 없이 항상 오케이다.


우리들의 데이트 첫 코스는 단지 내 산책이다.

단지를 크게 돌면서 그 당시 한창이던 자치회장장님의 독단적인 단지운영에 대한 뒷담화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다음은 남편 아이들이다.

남편들과의 '할많하않' 불통의 사건들을 하나씩 풀어헤친다.

서로의 얘기를 듣다 보면 '그래도 우리 남편이 좀 낫네' 하는 생각이 들 테지만 표정관리는 필수!


바로 이어 나는 한창이던 육춘기 아들과의 전쟁사를, 천사는 남매와의 애정사를 풀어놓는다. 이야기를 자면 천사는 넘사벽 모성애의 소유자로 나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경지다.

이렇게 대화는 무르익고 선선한 밤공기는 우리를 자연스럽게  단지 밖으로 이끈다.

우리의 두 번째 코스, 단지 밖은 도로를 달리는 차소리에 시끄럽지만 밤마실의 해방감을 안겨준다.


단지 밖  건물을 끼고 인도를 따라 한 바퀴 돌다 보면 목이 살짝 마르다.

그때 천사는 나에게 맥주 한잔의 의향을 묻고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콜'이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 넓고 환한 상가로 진입한다.

유난히도 넓은 인도의 보도블록을 사뿐히 걸으며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한.

야외테이블에 앉아 천사는 생수를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새로운 대화의 지평을 연다.

그렇게 데이트를 시작한 지 1시간 반 남짓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집으로 복귀한다. 

시원한 밤공기를 만끽하고 고단한 하루의 일상을 서로 위로한 .


사실 이렇게 나와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는 천사의 정체는 바로 '앞집 엄마'이다.


나는 주택에 사는데, 앞집엔 40대 초반 부부가 어린 남매를 키우며 살고 있다. 앞집 남자는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아주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 반면 와이프는 그런 남편의 부족한 점을 다 채우고 넘칠 만큼 인정 많고 지혜롭다. 부부의 조합이 나름 괜찮다.


그러나 처음부터 앞집 엄마가 나의 천사였던 건 아니다.

입주 초앞집과 실외기 소음문제가 있었다.

깐깐한 앞집 남편 때문에 문제해결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지혜로운 와이프가 나섰고 남편을 애써 설득해 다행히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 계기로 가까워진 우리는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큰 기대를 안고 들어온 주택살이가 녹록지 않아 맘고생을 꽤 했는데, 서로 동병상련의 고통을 나누면서 더 친해졌다.

그러던 중 주택 입주 6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인사발령으로 애들과 함께 가족이 모두 집을 비우고 섬생활을 해야 했다.

그 당시 아무도 없는 빈집에 간혹 급한 일이 생기곤 했는데 그때마다 앞집 엄마는 켜진 불을 꺼주고, 열린 창문도 닫아주고 태풍이 오는 날엔 베란다 빨래건조대까지 집안으로 들여놓으며 우리 집 집사를 자처했다.

거기다 1년 6개월의 섬생활을 끝내고 이곳 집으로 아온 후에도 여전히 바쁜 나를 위해 우리 아이들 준비물 심부름까지 해주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한참 아래 동생이지만 앞집 엄마를 많이 의지하게 되었고 우리는 속마음까지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한 번은 우리 집 주차장입구가 침하되어 도로 와 보도블록 보수공사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공사를 지켜볼 계획으로 직장에 하루 휴가를 냈다.

이른 아침부터 공사는 시작되었고 포클레인이 들어와서 큰 소음을 내며 주차장 측구를 깨기 시작했다. 

혹시나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많이 긴장돼 있었다.

오전 무렵 인부들 간식을 뭘 드리나 고민하고 있는데,  앞집 엄마가 우리 집에 들렀다. 

손에는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

내가 정신없을 것 같아 인부들 주려고 일 보고 들어오는 길에 챙겨 왔다는 것이다.

와... 이 센스! 놀라웠다.


또한, 공사 중에 사장님이 전력이  콘센트가 필요하다며 주방 인덕션 콘센트를 찾았.

그런데 인덕션 콘센트는 싱크대 랍장 안쪽 벽면에 붙어 있어 2단 서랍장을 철거해야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폭이 80센티미터나 되는 서랍이었고 하부 레일의 결합상태를 이해해서 분리시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엄두조차 못 내고, 사장님이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였다. '공사는 장비빨인데... 콘센트에 장비를 연결해야 공사가 야무지게 될 텐데'하며 걱정만 하고 있었다.

마침 박카스를 가지고 집에 들른 앞집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언니 나 해본 적 있어' 한다.

팔을 벌려 넓은 싱크대 서랍 양쪽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니 서랍이 순순히 빠지고 안쪽 깊숙한 곳에 인덕션 콘센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장비를 콘센트에 꼽고 속 시원하게 작업을  수 있었. 그러나 콘센트 사용을 마친 후 서랍을 다시 끼워 넣는 건 빼는 것보다 더 고난도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천사는 굴하지 않고 수차례 시도 끝에 결국 해냈다. 벌게진 얼굴로 "언니, 나 이런 거 하면 뭔가 희열을 느껴요" 하면서.


어쩌면 그때 딱! 때마침 나타나서 남자인 사장님도 못하고 있는 일을 가볍게 해결해 버리다니!!!


그녀는 늘 이랬다.

남편 병원 지원 근무도 종종 다니고 살림꾼이라 마트도 자주 다니고 애들 픽업할 일도 많은데 신기하게도 내가 급히 찾을 때 한 번도 연락이 안 되거나 멀리 있지 않았다.

항상 내 문제를 즉각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바빠서 미쳐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미리 챙길 정도로 배려와 센스가 나를 놀라고 감동하게 했다.


그렇게 앞집 엄마는 우리 집과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었다.

원래부터 착한 천성을 가진 데다 복도 많아 좋은 엄마 밑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천사는 우리 앞집에서 주부의 모습을 한 채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 이런 천사와 나는 서로에게 고백을 하며 웃는다.

' 나의 수호천사라고요~~'

'아 언니는 진짜 우리 언니 같다고요~~'


이제 다시 초여름이다. 그리하여 천사와의 데이트는 다시 시작되었다.

오래오래 이런 천사와 이웃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녀에게 든든한 언니가 되어 줘야지.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저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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