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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즈 Jul 24. 2024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집 가까이에 수변공원이 있다.

그곳에 1년 전쯤 수변 따라 좁다란 맨발 걷기 길이 조성되었다.

나름 멋진 곳인데 인적이 드물다.

그래서 나에겐 더 멋진 맨 발길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

비가 조금 오다 그쳤다.

적당히 비에 젖어 촉촉한 맨 발길, 얼른 가서 걷고 싶다.

아이들 아침은 남편에게 살짝 토스하고, 휴대폰과 이어폰을 가지고 나선다.


전날, 같이 걷자던 동네 후배들은 못 온다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아마 아침에 내린 비 때문이리라.

호젓하게 걷게 해 줘서 내심 고맙다.


맨 발길에 도착하면 슬리퍼를 벤치 옆에 얌전히 벗어 놓고 멀리 보이는 길 끝을 한번 바라본다.

두 명은 딱 붙어야 걸을 수 있는 좁다란 길.

양쪽 가로수가 기다란 터널을 만들고 길 끝에서 맨 발길과 만나 소실점을 이룬.

초록빛 나무와 뽀얀 황톳길이 만드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운치 있다. 


날이 풀리면 지렁이나 달팽이도 외출이 잦아져 길바닥을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

자칫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데만 정신을 팔았다간 끔찍한 압사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맨발 걷기는 천천히 걸으면서 지면과 발바닥의 접촉을 최대한 넓게, 최대한 오래 해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기운도 없고 느린 나에게 아주 딱 맞는 운동이다.


좁다란 길이지만 맨 발길 주변에 식재된 수종이  다양하다. 달마다 유사를 치르듯 아름다운 꽃이 연이어 피는데 3월엔 아직은 앙상한 나무들 가운데 새빨간 카네이션 동백이 후덕하게 핀다. 4월엔 화사한 벚꽃이 맨 발길을 환하게 밝혀주고 5월엔 자체발광 금계국과 이름 모를 하얀 들꽃이 가로수 사이사이에서 가녀리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게다가 무리 지어 있는 은목서는 밥알 같은 하얀 꽃을 피워 달콤한 꽃향기까지 진하게 선사한다. 6월엔 하늘빛, 남보라빛 수국이 화려함을 뽐내고 7월엔 백일홍이 고즈넉하게 맨 발길을 지킨다. 


그런데 딱하게이렇듯 싱그러운 초목 색색의 꽃을 보며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거닐지만 내  싱그럽지도 아름답지도 못할 때가 많았다. 갱년기 탓인지 외롭고 서러운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렸고, 불안하고 억울한 감정들을 곱씹으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러다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수변을 바라본다. 푸른 갈대가 자라고 있는 넓고 기다란 연못, 바람 따라 흘러가는 잔잔한 물결에 시선이 머문다.  잠시 물멍이다! 복잡한 감정이 사라지고 고요해진다. 차분하고 편안해진다. 


어느 날은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왜 자연을 좋아할까?',  '나는  물결을 보면 이렇게 편안해지지?' 금방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게 중 신박한 답도 있었지만 궁금증이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읽고 있던 책에서 답이 될만한 글귀를 발견했다.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고요히 흐르는 물결에게서 난 위로를 받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못을 바라본 그 순간 난 복잡한 감정에서 벗어나 물결과 그 주변 자연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잔잔하고 고요한 물결의 움직임에 동화되고 그 아름다움에 감화되었다. 그렇게 위로를 받으며 마음의 안정찾은 것이다. 나의 뇌피셜이다. 


오래전에 유해진 배우가 시상식 수상소감에 "항상 힘들 때, 외로울 때 저를 위로해 준 국립공원 북한산에게 고맙다"라했던 말이 회자되었다. 위트 있는 소감이었고 다들 많이 공감했으리라.

나도 힘들 때 자연을 많이 찾는다. 예전엔 주로 산을 많이 갔었는데 50대에 접어들면서 물이 좋아졌다. 가까운 곳에 수변공원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유명인도 아니고 수상소감을 발표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그냥 생각난 김에 지금 말해 볼까? "수변 공원아~ 발 길아~ 고마워! 외롭고 힘들 때  곁에 있어 줘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 사랑해~~♡"


못 온다던 후배들이 뒤늦게 합류하였다. 후배들에게 수변공원 에 대한 나의 뇌피셜 전했더니 "그래? 나는 그냥 물이 있구나 했는데" 하며 웃는다. 꽃들도 형형색색, 사람도 형형색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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