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발길에 도착하면 슬리퍼를 벤치 옆에얌전히 벗어 놓고 멀리 보이는 길 끝을 한번 바라본다.
두 명은 딱 붙어야 걸을 수 있는 좁다란 길.
양쪽가로수가 기다란 터널을 만들고 길 끝에서맨 발길과 만나소실점을이룬다.
초록빛 나무와뽀얀 황톳길이 만드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아름답고운치 있다.
날이 풀리면 지렁이나 달팽이도외출이잦아져 길바닥을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
자칫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데만 정신을 팔았다간 끔찍한 압사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맨발 걷기는 천천히 걸으면서 지면과 발바닥의 접촉을 최대한 넓게, 최대한 오래 해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기운도 없고 느린 나에게아주 딱 맞는 운동이다.
좁다란 길이지만 맨 발길 주변에 식재된수종이꽤다양하다. 달마다 유사를 치르듯 아름다운 꽃이 연이어 피는데 3월엔 아직은 앙상한 나무들 가운데 새빨간 카네이션 동백이후덕하게 핀다. 4월엔 화사한벚꽃이맨 발길을 환하게 밝혀주고5월엔 자체발광 금계국과 이름 모를 하얀 들꽃이 가로수 사이사이에서 가녀리고 사랑스러운매력을 발산한다. 게다가무리 지어 있는 은목서는 밥알 같은 하얀 꽃을 피워 달콤한꽃향기까지진하게선사한다. 6월엔 하늘빛, 남보라빛 수국이 그 화려함을 뽐내고 7월엔 백일홍이 고즈넉하게맨 발길을지킨다.
그런데 딱하게도 이렇듯 싱그러운 초목과형형색색의 꽃을보며 아름다운 자연속을 거닐지만 내 속은 싱그럽지도 아름답지도 못할 때가 많았다. 갱년기 탓인지 외롭고 서러운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렸고, 불안하고 억울한 감정들을 곱씹으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러다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수변을 바라본다. 푸른 갈대가 자라고 있는 넓고 기다란연못,바람 따라 흘러가는 잔잔한물결에시선이 머문다. 잠시 물멍이다! 복잡한 감정이 사라지고고요해진다.차분하고편안해진다.
어느 날은문득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왜자연을좋아할까?', '나는 왜물결을 보면이렇게 편안해지지?'금방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게 중 신박한 답도 있었지만 궁금증이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읽고 있던 책에서 답이 될만한 글귀를 발견했다.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고요히 흐르는 물결에게서 난 위로를 받고있었다. 고개를 돌려 연못을 바라본그 순간 난 복잡한감정에서 벗어나 물결과 그 주변 자연에 집중하였다. 그리고잔잔하고 고요한 물결의 움직임에 동화되고 그 아름다움에 감화되었다. 그렇게위로를 받으며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이다. 나의 뇌피셜이다.
오래전에 유해진 배우가 시상식 수상소감에 "항상 힘들 때, 외로울 때 저를 위로해 준 국립공원 북한산에게 고맙다"라고 했던 말이 회자되었다.위트 있는 소감이었고 다들 많이 공감했으리라.
나도 힘들 때 자연을 많이 찾는다. 예전엔 주로 산을 많이 갔었는데 50대에 접어들면서 물이 좋아졌다. 가까운 곳에수변공원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유명인도 아니고 수상소감을 발표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그냥 생각난 김에 지금 말해 볼까?"수변 공원아~맨 발 길아~고마워! 외롭고 힘들 때 내 곁에 있어 줘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 사랑해~~♡"
못 온다던 후배들이 뒤늦게 합류하였다.후배들에게 수변공원연못에 대한 나의 뇌피셜을전했더니 "그래? 나는 그냥 물이 있구나 했는데" 하며 웃는다.꽃들도 형형색색, 사람도 형형색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