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3월은 입학식을 치르자마자 교육설명회와 수업 공개가 있었고 4월엔 학부모 상담, 현장체험학습까지 숨 가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5월이었다. 급식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무심코 창밖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운동장을 둘러싼 벚나무는 어느새 분홍빛 꽃잎을 모두 떨구고 연둣빛 여린 잎으로 단장을 하고 있었다. 완연한 봄 햇살을 받으며 반짝거리는 여린 잎이 부드러운 바람에 나부꼈다. 운동장 밖 알록달록 보도블록 위에선 폴짝폴짝 저학년 아이들이 전래놀이가 한창이고 초록 잔디 운동장에선 고학년들이 벌게진 얼굴로 공차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옆을 보니 붉은 우레탄 트랙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우리 반 한결이와 승호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후 있을 운동회 계주 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날쌔게 달리는 모습이 제법 사내다워 보였다.
"그래, 운동회의 꽃은 역시 전 학년 계주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불현듯, 오래된 기억 하나가 피어올랐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지금 중2인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니까 벌써 7년이나 지났네.'
나는 고개를 들어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도 이렇게 맑고 푸른 하늘이었는데... 지금은 중, 고생이 된 두 아들 준우와 준영이의 7년 전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려 본다.
월요일 새벽 4시 반,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알람을 끄고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을 걷어낸다. 아직 덜 깬 어깨가 무겁지만 주저할 틈이 없다. 나는 남편을 깨우고 곧장 부엌으로 간다. 밤새 식어버린 거실 공기가 꽤 차갑다. 시린 발을 웅크리며 냉장고를 열어 주말 동안 먹고 남은 식재료를 장바구니에 빠르게 옮겨 담는다. 돌아오는 금요일까지 못 버틸 야채와 과일, 나물 반찬은 챙겨가야 한다. 아무리 짐을 줄이려 해도 네 식구의 먹거리는 언제나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고야 만다.
남편은 옷가지와 출근 가방을 챙겨 '삐리릭' 현관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주차장으로 나간다. 한겨울 썰렁한 차 안 공기를 데우기 위해 미리 자동차 시동을 걸어둔다. 거친 자동차 엔진소리가 이웃 어르신들 새벽잠을 깨울까 늘 조마조마하다. 차 안 공기가 조금 데워졌을 때쯤 나는 아이들 방으로 가서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두 아들을 깨운다.
"준우야, 준영아. 가자. 얼른 일어나."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비몽사몽 담요를 두른 채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자동차 뒷좌석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오만상을 쓰며 새벽잠을 계속 이어간다. 그래도 투정 하나 없이 깨우면 바로 일어나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늘 짠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거실과 부엌을 쓱 한번 둘러본 후 현관문을 닫고 조수석에 오른다. 아직 사방이 어두운 새벽 5시, 차는 헤드라이트로 어둠을 가르며 땅끝 선착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보화도로 가는 첫 배, 아침 7시 배를 타야 한다.
남편과 나는 부부교사로, 섬점수를 쌓기 위해 이곳 보화도로 오게 되었다. 사실, 큰아들 준우 때문이기도 했다. 자폐 스팩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작은 학교 환경이 도움이 될 거라 기대를 가지고 모험을 한번 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중등 교사인 남편은 그곳 중학교에, 초등교사인 나는 중학교 인근 초등학교에 각각 발령을 받았다. 두 아들은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로 전학시켰고 우리 네 식구는 남편이 근무하는 중학교에 위치한 10평이 안 되는 비좁은 관사에 거처를 마련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하는 보화초등학교는 마을 끝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담한 모래운동장 둘레엔 울창한 후박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민가와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본관은 판상형 3층 건물로, 좁은 모래 운동장 위 가파른 계단 끝에 있었다. 계단을 모두 올라 현관에 들어서면 조화로 꾸며진 화단이 방문객을 무심히 맞이한다. 그리고 현관 맞은편에 있는 후문으로 나가면 그곳엔 수돗가와 금붕어 몇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작은 연못이 있다.
1학년인 준영이는 학교 적응이 순조로웠다. 한 학년당 한 학급인 전체 6학급 규모의 작은 학교라 유치원 시절부터 늘 같은 반인 1학년 아이들은 도시에서 전학을 온 새로운 친구에게 호기심을 아끼지 않았다. 전학 며칠 만에 여자 친구로부터 편지도 받았고 그녀의 적극적인 공세로 둘은 공공연한 커플이 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에 또래보다 유난히 말을 잘하는 둘째는 다른 여자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어느 겨울 아침, 강당에서 0교시 음악줄넘기 수업을 마치고 본관으로 올라오는 같은 반 친구들과 그 시간에 등교하는 준영이가 계단에서 마주쳤다. 그중 한 여자아이가 준영이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눈이 예쁜 아주 작고 귀여운 아이였다.
"준영아, 손 줘봐."
영문도 모른 채 손을 내민 준영이 손바닥엔, 커다란 알사탕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음악줄넘기가 끝나면 하나씩 받는 선물을 등교하는 준영이에게 건넨 것이다. 그렇게 준영이는 인기쟁이였고 운동장에서도 교실에서도 늘 친구들 사이에 있었다.
하지만 준우는 달랐다. 1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5학년 친구들 중에 준우의 장애를 이해하고 가까이해 줄 친구는 없었다. 자폐 스팩트럼 성향상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준우는 늘 혼자였고 나는 가끔 학교 연못에 헤엄치는 금붕어를 하염없이 쳐다보거나 주변 도랑에 움직이는 벌레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키 크고 마른, 무표정한 얼굴의 준우를 마주치곤 했다.
불안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건 아닐까? 작은 학교가 오히려 우리 준우에게 더 큰 외로움을 안긴 건 아닐까? 여기 오기 전 그곳이 오히려 준우에게 익숙하고 편했던 건 아닐까? 내가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힘이 들 때면 나는 보화도 예향리까지 차를 몰고 갔다. 연둣빛 봄단풍을 눈에 담으며 그늘진 산길을 굽이굽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망망대해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해안도로로 접어든다. 나는 잠깐 차를 멈추고 수십 미터 벼랑 아래 마치 하늘로 오르던 선녀의 구슬목걸이가 끊어져 바다에 뿌려진 듯 알록달록한 부표와 새하얀 배가 수 놓인 잔잔한 예향리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다시 새봄이 왔다. 준우는 6학년, 준영이는 2학년이 되었다. 준영이는 여전히 즐거운 학교생활이 이어졌지만, 준우는 늘 혼자였다.
5월, 운동회가 다가왔다.
운동회를 하루 앞둔 아침에 체육 담당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선생님, 전교생 이어달리기에서 준우가 너무 느려서요... 뛰게 해야 할지 빼야 할지 고민이에요."
체육 담당 선생님의 말끝은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준우를 뺄 생각을 하신 선생님께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같은 동료로서 담당 선생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그날 오후, 교장선생님께서도 나를 따로 부르셨다.
"선생님, 운동회 계주 말인데요. 연습 때 보니 준우가 걷듯 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동생 준영이가 수군거리는 친구들 때문에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라고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범하지 않은 형의 모습을 보고 수군대는 친구들 말에 위축되고 상처받았을 준영이를 생각하니 엄마로서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네, 교장선생님 좀 이따 준영이랑 얘기 좀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겨우 대답을 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교장선생님까지 나서시는 게 아무래도 준우 달리기를 포기해야 할 것만 같았다. 준영이에 대한 심려도 진심이겠으나 준우의 행동이 박진감 넘치는 계주 흐름을 깨트리는 것도 많이 신경이 쓰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선 듯 큰아이를 빼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퇴근길에 준우를 학원에 먼저 내려주고 차 안에 준영이와 단둘이 남았다.
"준영아, 계주 할 때 형 어때?"
"걷듯이 달려요."
"친구들이 뭐라고 안 해?"
"저 형 바보 같다고... 저 형 때문에 우리 팀이 진다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준영이 많이 부끄럽겠네... 형 달리기 하지 마라 할까?"
그러자 준영이가 말했다.
"아니요. 형 예전엔 달리기 잘했잖아요. 연습하면 형 다시 잘할 수 있어요."
"그럴까? 준영아! 그래 그럼 우리 저녁에 중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해 보자"
둘째의 예상 밖의 대답에 나는 무척 놀랐다. 형을 믿어 주는 준영이가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사실 둘째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부터 언젠가는 준영이에게 준우형은 다른 형들하고 다르다는 걸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간혹 지금이 타이밍인가 하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면 준영이는 언제나 형에 대해 긍정적인 얘기를 꺼내곤 했다. "형은 동물박사잖아요", "형은 이거 잘하잖아요" 부족한 형이 아니라 여전히 뭔가 자신보다 우월한 형이라고 여기고 있는 준영이의 생각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 집에서 만난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운동회 계주에 관해 모든 이야기를 전했다. 남편은 별 말은 없었지만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우리는 저녁을 서둘러 먹고 관사 앞 중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남편은 준우를 앞세우고 뒤에서 쫓듯이 달리기를 시켰다. 하지만 준우는 좀체 속도를 내지 않았다.
"서준우! 너 강도가 흉기 들고 쫓아와도 이렇게 뛸 거야?"
남편은 답답함에 아이를 큰소리로 다그쳤다.
사실 아까 준영이의 말대로 준우도 저학년 때는 지금처럼 달리기를 기피하지는 않았다.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준우는 빨리 달리기를 거부했고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준우 성향상 순환적으로 나타나는 틱 현상이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없어 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요 며칠 보니 준우의 달리기에 대한 거부감은 생각보다 깊은 심리적 방어기제가 있는 듯했다. 이렇게 단순하게 다그쳐선 안 될 일이었다. 오히려 이러다 거부감이 더 커질까 걱정되었다. 그리고 평소 애들에게 신경 좀 쓰지, 발등에 불 떨어지니 아이를 다그치는 모습이 못마땅해 남편에게 한소리를 하고 말았다.
"여보, 그런 극단적인 말이 어딨어! 준우가 더 주눅 들잖아."
"제발, 내가 애들한테 말할 땐 끼어들지 마!"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결국 화가 난 남편은 집으로 가버렸고, 어두운 운동장에 아이들과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남편에 대한 노여움을 삼키고 가로등 불빛을 의지해 준우에게 달리기 연습을 좀 더 시켜 보았다. 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별수 없이 준우와 준영이를 데리고 관사로 향했다. 까만 밤하늘의 으스름달이 멀리서 우리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서둘러 출근한 학교 운동장엔 쾌청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울긋불긋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얼마 후 학부모들이 후박나무 앞에 쳐놓은 하얀 천막 안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교장선생님의 개회 선언으로 운동회는 시작되었고 매 경기마다 분주하게 흘러갔다. 나는 비담임으로 운동회 진행을 도우면서 중간중간 둘째와 함께 지구본 굴리기도 참여하며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어느덧 오늘 운동회 하이라이트인 전교생 계주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운동복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편이 운동장에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다. 어젯밤 다툰 후로 아직 화해를 하지 않은 터라 나를 보는 남편의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나는 남편을 보자 왠지 모를 안도감이 올라왔다. 남편은 관중석 학부모들 사이로 들어가서 섰다.
전교생 계주는 여린 주먹을 불끈 쥔 1학년을 시작으로 모든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청팀과 백팀이 엎치락뒤치락 재밌게 전개되었다. 나는 트랙 안쪽에서 다음 주자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계주가 막바지에 다다를 즘 다음 주자로 내 앞에 준우가 출발선에 섰다. 긴장돼 보이는 준우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때 관중석에 있던 남편이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준우 옆에 서는 게 아닌가? 그리고 바로 그때 배턴이 기다리고 있던 준우에게 넘겨졌다.
“준우야 뛰어!” 나는 준우에게 작게 외쳤다.
준우가 출발했다. 그 순간 남편이 트랙 바깥쪽에서 준우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트랙 안쪽에서 달리고 있었다.
"준우야! 빨리! 더! 더! 더! 달려!"
남편은 힘 있게 외치며 아이를 이끌었다. 덩달아 나도 준우에게 소리쳤다.
"우리 준우 잘한다!"
양쪽에서 쏟아지는 엄마 아빠의 응원 속에, 아이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도 필사적으로 달렸다. 준우의 여린 눈빛은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 보였지만 준우의 다리는 아빠의 구호와 속도를 따르며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우리는 그렇게 끝까지 함께 달렸고, 아이는 마침내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주었다.
남편은 배턴을 넘기고 쓸어질 듯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준우를 어루만지며 숨을 골라주고 난 뒤 아이에게 "준우 잘했다!" 한 마디를 남기고 나와는 눈 맞춤도 없이 총총히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큰아이가 22개월이 될 무렵 여러 병원의 검사 결과 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최종 진단이 나왔을 때, 나는 조기에 발견했으니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면 언젠가는 보통아이처럼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큰아이의 발달장애에 대해서 체념하듯 그냥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뇌발달에 좋다는 값비싼 한약을 먹이고, 아이 재활치료를 위해 장기간의 휴직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임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이렇다 할 시도나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많이 힘들었고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보았다. 우리 준우와 준영이를 지키려는 남편의 의지와 사랑을.
계주가 끝난 후 이미 달리기를 끝내고 운동장 한쪽에 무릎을 세우고 그 사이에 머리를 떨군 채 앉아 있는 준영이에게 다가갔다. 혹시 우리 가족이 연출한 그 장면이 부끄러웠을까 걱정되었다.
“우리 준영이 왜 그러고 있어? 형 때문에 그래?”
“형만 같이 뛰어주고... 나는 안 해주고"
생각지도 못한 준영이의 대답에 나는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우리 준영이 아직은 어린아이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움이 아니라 질투여서 '다행이다'라고 안도하며 준영이의 뽀얗고 포동한 볼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어이구, 우리 아기, 우리 준영이."
운동회가 끝나고 그날 오후, 평소 가까운 3학년 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선생님! 남편분 정말 멋지세요.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그래요? 우리 애들 아빠 좀 멋지든가요?"
나는 기분 좋게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퇴근 후 마주한 남편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남편은 원래 한번 토라지면 풀리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성격이다. 고약하게도. 그러나 나는 그날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남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여보, 우리 오늘 외식할까?"
"그러든지."
준우와 준영이를 불러 우리는 보화도 유일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짙푸른 바다에 저녁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2년 후 남편과 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 4시 반 기상의 힘든 섬 근무를 정리하고 아이들과 함께 도시로 돌아왔다. 이제 고3과 중2가 된 아이들은 그날을 기억할까?
불안하고 힘겨웠지만 함께여서 아름다웠던 그때를.
오늘도 하늘이 참 맑고 푸르다.
운동장에서 열심히 달리기 연습을 하는 한솔이와 승호가 계주 대표로 선발되어 트랙을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리 반 다른 아이들은 아마도 목청 터져라 외치겠지.
승호야! 한솔아! 달려! 더! 더! 더!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