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정리하며
큰아이가 어렸을 적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남자아이들은 태생적으로 공룡과 와 자동과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첫째는 공룡과였고 둘째는 자동차과였다.
큰아이가 3살 무렵 나는 퇴근 후 아이와 함께 근처 횟집을 자주 갔다. 우리 집에서 횟집까지 어른 걸음으론 5분 정도 거리지만 3살 배기 아이 걸음으론 20분이 넘게 걸렸다. 아파트 단지 사잇길을 걸어 걸어 도로변에 작고 오래된 횟집에 도착하면 식당 밖에 놓인 허름한 수족관이 보인다. 우리의 목적물이다. 수족관 안에 몇 종류의 활어들이 무겁게 헤엄을 치고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농어, 광어, 돔, 장어 등이 좁은 수족관에서 나른하게 헤엄치는 것을 하염없이 관찰했다. 나는 "물고기가 헤엄을 치네" 하며 말공부 겸 움직이는 물고기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과묵한 아이에게 혼잣말을 건넨다. 30분 정도 보고 나면 끝없이 보려는 아이를 달래서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는 길에 개미라도 보이면 또 거기서 30분 개미관찰을 한다. 엄마에게 뭔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아무런 욕구도 없이 그저 개미의 일거수일투족만 하염없이 관찰하는 아이 옆에서 난 좀 심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아이와 둘째 아이의 터울이 4년이라 그렇게 오롯이 큰아이에 집중하며 보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물을 이렇듯 좋아하는 아이에게 공룡은 당연한 섭렵의 영역이었다. 책, 피겨, 다큐, 영화 등 공룡에 관련된 것들은 모두 망라했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공룡의 이름도 한번 들으면 기억하는 아이를 보고 '우리 아이 영재 아닐까?' 하는 착각도 했다. 아이 덕에 나도 그 시절엔 공룡이름도 많이 알았고 자연관찰 책을 많이 읽어주면서 구멍 난 내 자연과학 상식도 채울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애정했던 공룡은 프테라노돈이었다. 날아다니는 공룡, 익룡이었는데 다니던 유치원에 있던 커다란 프테라노돈 피겨를 하원 때면 집에 가지고 오고 싶어 해서 선생님과 자주 실랑이를 했었다.
아들의 동물 사랑은 꽤 오래갔다. 유아시절을 지나서는 공룡보다는 곤충이나 괴물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을 보면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곧잘 그린다. 큰아이는 곤충을 잘 그렸다. 아주 세밀하게. 그걸 보고 나는 아이의 재능이 이쪽인가? 싶어 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웬걸 세밀화를 그리는 장점이 계발되기는커녕 곤충 그리던 취미도 사라지고 그저 일반적인 정물화나 채색화를 배우던 아이는 그림 실력이 평범 이하라는 사실을 알게 될 뿐이었다.
올해로 고3이 되는 큰애는 이제 그다지 동물 관련 책을 보진 않는다. 하긴 유튜브에 맛을 들인 이후로 책 자체와 거리가 생기긴 했다. 하지만 집안에 벌레가 들어오면 벌레라면 질색하는 나와 둘째 대신 큰애는 아무 거리낌 없이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집어 밖으로 고이 내보내준다. 어릴 적 동물사랑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고운 심성을 남겼다.
코로나 시절 중학생이었는 큰 아이가 집에서 원격수업할 때가 많았다. 나는 매번 점심을 챙겨 놓고 출근할 여유가 없었다. 큰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해 먹기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햄을 구워 먹고 고기를 구워 먹고 만두, 맛살등 정 구울 게 없으면 마늘을 구워 먹었다. 어느 날은 퇴근하니 계란볶음밥을 한 솥 해놓고 "엄마! 드실래요" 했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날 저녁은 나도 어쩔 수 없이 계란밥을 먹었다. 그 이후로도 주말에 점심 정도는 자기가 알아서 먹겠다며 냉장고에 있는 각종 재료들을 차분히 손질해 프라이팬에 앞뒤로 정성스러게 구운 후 접시에 예쁘게 차려 먹는 아이를 보면 '요리 쪽인가?' 하며 솔깃한다. 하지만 또 요리 취미마저 없애면 안 되지 싶어 앞서 가지 않는다.
뭔가 특별한 재능을 아직 보여주진 않지만 침착하고 유순한 우리 큰아이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찬찬한 성격은 살림밑천이라는 큰 딸 못지않게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해주고 빨래도 개서 서랍에 정리해 주고 청소하자고 하면 늘 불평불만인 둘째와는 달리 자기 몫을 군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해 준다.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남편보다 더 내 기분을 살펴주는 우리 큰 아이.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된다.
큰아이가 분신처럼 가지고 놀았던 많은 동물 피겨들을 이제야 정리하면서 큰아이와의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