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에 관하여

갈수록 소중해지는 것들

by 브리즈

유튜브 쇼츠를 보다 평소 좋아했던 배우 이한위 씨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늦장가를 가서 꾸린 가족 이야기였다. 어리고 애교 만렙인 아내와 세 자녀를 키우며 사는 일상을 보여줬다.

무슨 축하할 일이 있는지 가족들이 모여 아이들 앞에 초코파이에 초 하나씩을 꽂아 놓고 있었다. 아빠인 이한위 씨가 축하 타이틀을 말하면 가족 모두 축하송을 불렀고 주인공은 촛불을 껐다. "먼저 둘째, 받아쓰기 100점 맞은 거 축하합니다. 그다음 막내, 받아쓰기 1개밖에 안 틀린 거 축하합니다. 마지막 큰딸, 무슨무슨 축하합니다." 세 자녀 모두가 각자의 타이틀로 축하를 받았다.


'어머! 저런 것도 축하를 하는구나. 축하가 꼭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 생일 축하 말고는 가족들과 나눈 축하가 별로 떠오르질 않았다.

좋아 보였다. '저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칭찬의 말만으로 그냥 지나쳐 버렸던 가족과 아이들의 기념할만한 일들이 떠오르며 아쉬웠다. 작은애는 합기도 1,2단을 땄었고 큰애는 컴퓨터 자격증을 이것저것 따고 있고 남편도 직장에서 이런저런 상을 받아 왔다. 그런데 그냥 무심히 넘겨버렸다. 새삼스럽기도 했고 호사다마라고 괜히 나대다 실망할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조심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군민의 날 행사로 관내학교 학생들 그림을 마을 여기저기에 전시했다. 내 그림도 뽑혀서 전시 돼 있는 것을 친구가 자기 동네에서 봤다며 얘길 해줬다. 그림이 전시된 학생에게는 소정의 학용품 선물이 주어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선생님께 내 그림도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친구가 '왜 넌 안 준데?' 하며 나에게 조용히 의문을 제기했지만 난 벙어리 냉가슴만 앓다 '난 운이 없나 봐'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그 후 기대에 부풀었던 나 스스로 참 무색해서 앞으로 기대할 일이 있어도 김칫국부터 마시지 않도록 자중했고 좋은 일이 있어도 무덤덤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결혼한 남편은 나보다 더 그런 성향이었다. 그래서 좋은 일이 뭐 그리 많진 않았지만 그 몇 안 되는 일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지나쳤다. 그러니 50 인생 살면서 어쩌면 이리도 축하할 일도 기쁜 일도 없는지... 인생이 참 이벤트라곤 없었다.


1년 전 교육심리학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자기 효능감이라는 용어를 설명하면서 교수님의 경험담을 말해 주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나온 교수님은 학교 다닐 때 공부가 정말 힘들었단다. 그런데 그 학교는 전통적으로 졸업식을 엄청 성대하게 치렀고, 졸업식을 하면서 자신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듯한 느낌을 받았단다. 이렇게 졸업식, 입학식 등 인생의 중요한 관문을 통과할 때는 기념을 특별하게 함으로써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부여하면서 자기 효능감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받아쓰기 100점 축하가 꼭 자기 효능감 강화의 목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성과지만 가족들의 축하를 받는 아이들은 분명 뿌듯한 감정을 느꼈을 테다. 그리고 작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가족의 모습은 정답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기념일 챙기는 것도 사실 바쁜 일상 중에 큰 부담이다. 그런데 초코파이에 촛불 하나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파티를 만들고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큰 기쁨이 생기길 고대하기보다 작은 기쁨이라도 놓치지 않고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 입학, 졸업등 인생의 중요한 관문을 지날 때는 좀 더 의미 있게 기념해 보련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정말 외로울 때는 슬픈 일이 있을 때가 아니라 좋은 일이 생겼는데 같이 나눌 사람이 없을 때라고.

그래, 기쁨을 함께 나눌 가족과 친구들이 있을 때 누리자. 충분히.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런 나여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