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현재-미래의 패러독스
<썸머 필름을 타고!> (2022)
"사랑이란 대사 없이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야 영화 아냐?"라는 대사와 반대로, 이 영화는 온통 사랑으로 가득하다. 마치 사랑 따윈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 같다.
결혼에 대해서 물었더니 '지금이 너무 좋아서'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휴대폰 액정에 비치는 숫자 덕분이고, 이 숫자가 사라지면 지금을 붙잡을 수단도 사라진다. 지금에 머무려다가 시차가 어긋나 버리면 고생을 꽤나 해야 한다.
빈지노는 '시간에 뒤쳐지거나, 같이 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신발을 신을 거라고 했다. 시차가 어긋나지 않으려면 지금이 뒤쳐지기 전에 어디론가 뛰어야 한다. 지금이 붕괴되기 전에 붕괴시켜야 한다. 손에 쥐고 있는 게 망치가 됐건, 폭탄이 됐건, 포크레인이 됐건, 사랑이 됐건.
맨발은 사무라이지만 승부하기를 주저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마주한 숙적을 마음 깊이 이해하기 때문에 벨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가 칼을 휘두르면 그가 죽는 미래가 그려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처럼 숙적이 호락호락하게 베어질 리 없다. 맨발이 할 수 있는 건 상대를 향한 칼을 정성스럽게 거머쥐는 것 밖에 없다.
미래엔 영화도 마시멜로도 파르페도 없다. 심지어 사람이 이삿짐을 옮기지도 않는단다. 노동에서 가치를 찾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그 미래는 조금 징그럽긴 하다. 뭐든 사람이 실어 날라야 맛이 나는 법인데.
과거에는 TV가 사랑을 실어 날랐고, 그전에는 라디오, 그 너머에는 글이 있었다. TV마저 쇠락해지는 모습을 보면 미래에 영화가 사라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징그럽긴 해도, 이 모든 건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 다양한 양상일 뿐이고, 그래서 뭔들 마음을 전하고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우리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붙잡을 것을 찾는다. 누구는 과거에 집착하기도 하고, 누구는 미래에 헌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붙잡는 버릇을 들이면 넘실거리는 파도에 자신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린타로가 미래에서 왔지만, 지금 같이 영화를 찍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의미는 행동에서 나오고, 타임 패러독스고 나발이고는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에 비해서는 너무 거대한 것이라서, 되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승부는 영화에 비해서 너무 중요한 것이라서, 때로는 영화가 뒷전으로 밀리기도 한다. 감독인 맨발도 그걸 영화가 다 끝날 무렵에야 알아차렸다. 그래도 아직 영화가 다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승부를 할 기회가 남아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