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을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들
<바비> (2023)
유튜브에 the Slap 2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영상이 있는데, 정말 골 때린다. 이 영상의 미덕은 피아식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지 뺨을 때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썸네일에 나오는 불쌍한 두 아이를 보라. 이 남성은 이미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1분 11초라는 영상의 길이 또한 적절하다. 짧은 길이를 통해 세상을 향한 적대감만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불편함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깔끔하게 표현하고 있다. 정말이지 탁월하게 뺨 때리는 영상이다.
이 영상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바비>는 탁월하게 뺨 때리는 영상은 아니다. 일부분 미덕을 공유하는 지점도 있다. <바비>도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의 뺨을 후려갈긴다. 피아식별이 없다는 점은 저 영상보다 더 지독하다. 그러나 영상의 길이가 1시간 50분을 넘어가다 보니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죄책감과 타격감은 썩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오래 맞다 보면 일종의 해명이 필요하다. 왜 그렇게 화가 난 거냐고. 맞는 사람도 이유는 알고 맞아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서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두려워졌다. 이걸 어떻게 수습할 건데! 시원하게 휘두를 때는 좋았지만, 어지러워진 방을 정리하는 것도 내 몫이다.
하버마스가 말했듯이 사회이론은 현상을 진단함과 동시에 개선을 위한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 모든 영화가 사회이론은 아니겠지만, 이 영화는 사회를 난도질을 하고 있었고, 그 정도로 조각을 냈으면 다시 붙이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 한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화가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별 말 하지 않는 것은 마땅한 처방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직면하는 것이 창작자의 직무이고, 그걸 직면하는 방법에서 창작자의 역량이 드러나는 법이다. 처방을 제시하기 위해 <바비>는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로 돌아간다. 영화는 현실의 모-녀 관계와 바비랜드의 제작자-바비 관계를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개인이 따라야만 하는, 타자에 의해 제시되는 본질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글로리아(엄마)가 자신이 짊어진 부담을 쏟아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너무 전형적이긴 했지만, 그래서 더 왜 그렇게 화가 난 건지에 대한 대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듯하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부모의 삶은 사람 사는 꼴이 아니라고 하던데, 어쩌면 화가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세상은 항상 거지 같았으니까.
부모는 아이 때문에 화를 내고, 아이 때문에 수습한다. <바비>도 마찬가지로 육아 스트레스에서 출발해서 거지 같은 세상을 때려 부수고, 관계가 갖는 가치를 부여잡고 난장판이 된 세상을 치운다. 거지 같은 세상도 관계에서 시작된 거니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여전히 거지 같지만). 세상은 항상 날 열받게 만들지만 정작 중요한 건 옆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이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가사처럼 이 미친 세상이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옆에 있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