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급한 선수 Sep 07. 2023

그림 속의 남자

남자와 함께 그림이 되어버린 이야기

<한 남자> (2023)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같은 그림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림은 액자 속에 있는데, 또 다른 액자 속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액자 속의 그림의 또 다른 액자 속에는 뒷모습이 반복해서 그려져 있다. 액자를 벗어나는 것을 허락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두 겹으로 가둬놨다.


  분명 유의미한 형태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영화를 벗어나서 현실에 당도하지 못한다. 힘차게 달려오던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 거듭해서 해소돼서 체력을 다 소진하고 만 마라토너처럼 겨우 결승선을 통과한다. 현실에 발 디뎌볼 여지도 없이 해소되는 바람에 이야기는 지평좌표계를 고정할 방법을 빼앗긴 채로 떠도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은 서술자의 직업이 변호사인 점에서 보다 극대화된다. 변호사는 자신의 것이 아닌 문제를 해소하는 직업이다. 문제에 발을 딛고 있지 않아서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객관적인 형태로 가공한다. 다만 그는 남의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가 자신의 것임을 반복해서 주지당해야 한다. 이는 해소자로서의 지위를 위협함과 동시에 억지로 쌓아 올린 지위가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해소될수록 서글프다.


  만나는 사람들이 지평좌표계를 회복하는 것과 반대로 변호사는 지평좌표계를 버리고 이야기와 함께 떠도는 것을 선택한다. 이렇게 교차하는 에너지에 등 떠밀린 관객은 이야기 밖으로 쫓겨나고, 함께 다루던 사회 문제는 변호사의 몫으로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남겨진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그가 담긴 그림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