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햇살이 마당을 어루만질 즈음, 손녀의 작은 정원 한켠에서 조용히 별꽃이 피어났다. 흙을 고르고 조심스레 씨앗을 심던 그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하얗고 앙증맞은 꽃잎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별빛이 땅에 내려앉은 것처럼 반짝이는 그 모습에, 괜스레 마음 한쪽이 포근해졌다.
작년 봄, 손녀 집에 머물던 어느 날이었다. 작은 마당 한켠에 놓인 빈 화분을 보고 손녀가 말했다. “할머니, 우리 꽃 심자!”
조그마한 손을 맞잡고 흙을 덜어내고, 씨앗을 심었다. 그날 심은 건 단지 꽃씨만이 아니었다. 웃음과 이야기, 그리고 오랜만에 함께 보낸 고요하고도 따스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게 헤어지고 계절이 돌아, 어느새 별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 속 작고 환한 꽃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곳에 내가 있고, 손녀와의 시간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병과 싸우며 보낸 지난 1년은, 길고도 조용한 터널 같았다. 아픈 몸을 끌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동안, 마음 한켠에선 손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심었던 그 작은 화분이 자주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찾은 손녀의 집. 마당 끝, 그 자리에 변함없이 놓인 화분 속에서 별꽃이 또다시 활짝 피어 있었다. 작고 연약한 꽃이지만, 그 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그 어떤 봄보다도 따뜻했다.
별꽃은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잘 견뎌줘서 고마워. 다시 와줘서 고마워.”
별꽃 앞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른다. 바람이 살짝 스치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아팠기에 더 고마운 지금이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기에 더 찬란한 봄이다.
화분 속 별꽃은 여전히 작고 수수하지만, 내게는 이 세상 어떤 꽃보다도 귀하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이, 마음이, 사랑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이 봄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별꽃이 피어준 이 작은 정원과 함께.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너희에게,
고맙다. 따뜻한 봄날을 다시 맞이할 수 있게 해줘서.
내게 다시 피어날 마음의 꽃을 심어준 너희가 있어, 나는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