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날 며칠,
비가 쉼 없이 내린다.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나인지라
우산을 쓰고 옥상 위를
이쪽 저쪽 천천히 거닌다.
비 냄새, 젖은 공기,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까지도 정겹다.
그러다 문득
열다섯 해 전쯤의 장면이 떠오른다.
비 오는 제주,
언니와 함께 비옷만 걸치고
하루 종일 걷고 또 걷던 날들.
배가 고프면 골목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김밥 한 줄, 떡 하나로 허기를 채우며
웃고, 떠들고, 또 걸었다.
그때의 우리는
젖어도, 다 젖어도 괜찮았다.
우산도 없이, 마음껏 웃으며 걷던 그 시간—
그립다.
다시 할 수 있을까.
비 오는 골목을,
언니랑 나란히—
그땐 몰랐던
자유롭고 당당한 걸음으로.
지금의 나는
뇌경색 이후의
느리고 어설픈 펭귄걸음이지만,
그날의 웃음과 빗소리는
여전히 내 안에
고스란히 젖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