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순간

나의 하얀머리

by 손정희



머리에 온 대상포진으로, 20년째 해오던 머리 염색을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아 있던 염색 머리가 다 잘려 나간 지금, 거울 속 나는 백발이다.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아직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낯설다. 많이 낯설다.



백발이 되고 난 첫 날,


손녀들과의 페이스톡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할머니를 본 순간,


화면 속 손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잠시 가만히 있었다.



당황한 며느리가 “할머니가 아프셔서 그래”라고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고,


그제야 손녀들이 조심스레 말했다.


“할머니 괜찮아? 이뻐…”



그러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큰소녀가


한 마디 남겼다.


“할머니, 옛날 머리… 진짜 이뻤는데…”



그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는 한참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익숙했던 나와 작별하고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길,


그 시작은 그렇게


작은 침묵으로


조용히 열렸다.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조금만 더 예쁜 모습으로 아이들 곁에 있어줄 수 있었는데,


너무 빨리 '늙은 할머니', '미운 할머니'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다른 모습의 할머니를 보여주자고.


겉모습이 아닌 내 안의 빛으로.



요즘 나는 영어 공부와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피아노도 다시 시작했다.


마디 굵어진 손가락이지만,


건반 위에서는 여전히 꿈을 꾼다.



나는 멋진 할머니로 손녀들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싶다.


누구보다 내 손녀들만큼은


내 안의 진짜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하얀 머리 너머로, 내가 살아온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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