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그녀가 오롯이 쉴 수 있는 휴가였다. 남편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에 가기 때문이다. 주변의 엄마들은 명절 때마다 그녀를 몹시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달랐다. 그녀의 노모가 식당을 개업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노모는 그녀가 결혼할 때 집 한 칸 마련해 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늘 무언가 일을 벌였다. 그러기에 그녀 역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노모의 일을 도왔다. 변덕스러운 알바들 덕에 그녀는 일 년에 딱 두 번 있는 동굴행을 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식당엘 나섰다. 그런데 식당에 아주머니가 있는 것 아닌가. 얼마 전 아르바이트로 인연을 맺었던 분인데 명절에 시간이 되어 나와준 것이었다. 그렇게 극적으로 그녀는 예년처럼 동굴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모든 가족들에게서 차단된 그녀는 제일 먼저 소주 한 병을 까서 마셨다. 하지만 오랫만에 세 아이에게 이어져있던 긴장의 끈이 풀어진 탓일까, 아님 오랜만의 음주 탓일까. 그녀는 정신을 잃으며 중얼거렸다. 야. 김철수. 너만 술 마실 줄 알고, 너만 담배 필 줄 아는 거 아니야. 내가 너보다 더 마시고 더 잘 폈어. 술에 취하면 엄마로서, 주부로서 일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참은 거야. 아이들이 담배 안 피우는 척하는 엄마를 모른 척 애쓰는 표정이 싫어서 그마저도 끊은 거야. 너는 술 마시다가 회사일에 펑크를 내도, 회사일에 줄담배를 태워도 남, 앞에 서니까.
그녀에게 가장 먼저 차단된 가족은 아버지였다. 그녀에게 유년시절 기억의 시작은 아버지의 폭력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증오하며 십 대를 보냈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살았고 어머니를 이혼시키기 위한 대리인으로 싸웠다. 이십 대는 아버지를 보고 배운 오빠에게 두들겨 맞으며 시작되었다. 그녀는 자기를 죽여버리겠다고 소리 지른 오빠를 피해 다니며 이십 대를 보냈다. 오빠는 그녀에게 차단된 두 번째 가족이었다.
삼십 대에 만난 지금의 남편은 그녀의 유년시절 술주정을 듣고도 도망가지 않은 유일한 남자였다. 그녀는 혼인을 통해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비로소 안전해졌다는 느낌을 잠시나마 느꼈다. 그런데 그곳에는 남편의 또 다른 가족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난했던 그녀의 시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된 것을 축하한다. 작은 금반지와 함께 앞으로 잘해줄게라고 쓴 카드를 결혼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녀가 시어머니에게 받은 메시지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생일도 챙겨야 하냐는 말이었다. 서울로 장학생이 된 장남을 유학 보낸 부모는 아들이 서울에서 맏며느리를 주워올 거라 기대했던 것일까. 30평대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 집을 놔두고 17평의 국민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장남 집에서 명절에 모여야만 하냐는 말에 그녀의 시아버지 또한 발길을 끊었다.
처음부터 명절이 그녀의 휴가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 년 내내 외벌이에 빠져 살고 있는 남편 덕에 그녀 역시 동업자라는 독려로 일 년 내내 홀로 살림하고 육아하였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보다, 아빠보다, 효자가 먼저 된 철수는 명절에는 그녀가 특근을 해주길 바랬다. 10년 동안 8번의 유산, 출산을 겼었던 그녀의 삶은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매 명절마다 그들은 각자 허공에 대고 짖었고 그녀는 혼자 집에 남았다. 그것이 이제 그녀의 휴가가 된 것이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술에서 깨었다. 그녀는 노모의 식당에 별일이 없을까 걱정이 되었다. 일하러 나와준 아주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주머니가 엄마 곁에 계셔서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누구한테 의지를 하는 거야. 마흔 살이 넘은 자신이 철부지 어린 소녀처럼 느껴져 이내 한심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어린 시절 입원해 있을 때 일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이민을 간 이모가 떠올랐다. 며칠 전 식당일로 아이의 행사에 불참하게 되자 그녀의 세 아이를 끌고 행사에 다녀와 준 여동생 같은 아이 친구의 엄마도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이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의지할 수 있고 그녀를 도와줄 가족. 그녀는 마흔 살이 넘었지만 그녀의 마음속 소녀는 오래전 고아가 된 채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아주머니께 문자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 정말 감사해요. 늘 마지막 일로 미루어져 할 수 없었던 글짓기를 해볼 수 있었어요. 오버하는 것 같아 두 번째 문장을 지우고 다시 썼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평안한 추석 보내세요!